"여기, 사람이, 있(었)다" 윤필, 재수 작가의 '다리 위 차차' - WIIZM WEBTOON (WEBTOON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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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 차차

"여기, 사람이, 있(었)다" 윤필, 재수 작가의 '다리 위 차차'


다리 위 차차

official icon "여기, 사람이, 있(었)다" 윤필, 재수 작가의 '다리 위 차차'

인간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도록 인간의 본질을 상상하던 인간은, 이제 과학의 힘을 빌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윤필 작가와 재수 작가가 협업해 연재하는 작품이다. 근미래를 다루고 있는 SF장르의 만화로, 한강 다리에 자리잡고 있는 자살방지로봇 ‘CHA-88K’, 통칭 “차차”라는 로봇을 비롯한 로봇들이 겪은 이야기를 옴니버스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곧 폐기처분 될 예정인 로봇인 자살방지로봇 차차, 자살방지 로봇으로 처음 투입된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는 24시간 다리 위에 상주하며 죽음을 다짐한 사람들을 무사히 되돌려 보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자살률은 줄지 않았다. 어느 순간, 차차는 문제의 원인을 중심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여성형으로 만들어진 몸이 거부감을 준 것은 아닌지, 전문용어를 남발한 것은 아닌지, 그것도 아니라면 표정이 문제는 아니었는지. 마치 인간의 사고방식과 비슷하다. 문제는 시스템인데, 차차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차차의 전자두뇌 회로속에 한 상담자의 말이 맴돌기 시작했다. “넌,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 '넌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긴 컷을 리뷰에 맞추어 편집하였습니다 ]

 

 

도시의 중심축이 변하면서 이제는 누구도 건너지 않는 다리 위에, 차차는 홀로 남아 생각하고 있다. 그제야 차차는 깨닫는다. 그리고 무가치해진 차차에게 수수께끼의 남자가 다가온다. 차차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부터 찾아오던 남자는, 어느 순간 차차에게 묻는다. “이 곳에 있는 이유가 뭐냐”고. 차차는 “이곳에 있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답한다. 남자는, 차차가 소명을 더 잘 지킬 수 있도록 ‘연결시켜주겠다’고 말한다.

 

<다리 위 차차>에는 다양한 로봇들이 나온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로봇, 온라인으로 옮겨간 은행을 대신해 모든 서비스를 대신하는 ATM 지킴이 로봇, 패스트푸드점 관리 로봇 등등. 그 중에 가장 인상깊은 로봇을 꼽으라면, 나는 아이와 놀아주는 로봇 ‘미미’와 패스트푸드점 관리 로봇을 꼽겠다. 미미는 낡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곰인형 로봇이다.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미미는, 어느 순간 각성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주인에게 말을 걸어오는 장면과 이어지는 시퀀스는 감동적이면서, 동시에 충격적이다. 뿐만 아니다. 패스트푸드점을 관리하는 로봇은 함께 근무하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전혀 새로운 지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들은 로봇과 관계를 맺을 때 불필요한 감정소모가 필요 없다는 점 때문에, 로봇을 더 선호한다. 때문에 쓸모 없어졌다고 느끼는 인간에게, 로봇은 ‘직장 동료간의 대화’라는 말을 건넨다. ‘점장님은 필요한 분이었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이 말은, 인간이 로봇에게 다시금 반복하는 말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에는 크게 ‘강한 인공지능’과 ‘약한 인공지능’이 있다고들 한다. 강한 인공지능이란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이고, 약한 인공지능은 자아는 없으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보다 더 뛰어난 로봇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는 자신이 로봇이라는 자각도, 바둑 등 입력된 게임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리 위 차차>에 나오는 로봇들은 자아를 가지고, 타인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알고 스스로 감정도 느끼는 강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들이다. 설정 상에서는 로봇들이 어느 시점까지는 약한 인공지능이었으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예기치 못한 일들이 폭발적으로 벌어지는 시점)를 지나고 나서 로봇들은 기억을 갖고, 자아가 생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로봇들은 하나같이 인간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자신이 애착을 가진 대상의 소멸을 그리워하다 마침내 작동을 정지시키기도 한다. 반면 인간들은 인간과의 관계를 불편해하고, 인간보다 로봇을 신뢰하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 소외된 인간들을 지키는 것은, 홀로 죽어가는 인간을 지키는 것은 로봇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사람”의 정의를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

[ 누가 인간이며, 로봇일까. 그(그녀)는 서로를 위로하며 앉아 주었다 ]

 

<다리 위 차차>는 이 고민이 이루어진 이후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로봇은 반려동물등의 소유권을 가질 수도 있고, 주연으로 등장하는 또다른 로봇 “아이”처럼 특정 단체나 기업의 대표를 맡을 수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 로봇들이 과연 “구원”인지, 아니면 “종말의 예언”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로봇과 인간과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내용처럼, 우리를 최소 단위까지 잘게 쪼개면 모두 동일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우리를 다른 것들과 다르게 하는 건 인간이라는 자의식과 다른 존재와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간은 언제나 기술의 발전, 산업 고도화, SNS의 등장 등 다양한 핑계를 대며 소통과 공감 능력의 소멸 가능성에 대한 변명거리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한 로봇들이 인간보다 더 소통과 공감에 뛰어나다면, 그리고 그들이 소외된 인간들을 보듬고, 약자들에 대한 차별 없이 다가갈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리 위 차차>는 다양한 로봇들과 인간들, 특히 죽음을 앞둔 사람이나 어린이, 노인 등 약자들과의 관계를 비춰준다. 우리가 사회에서 배제시킨 다양한 존재들과 소통하는 로봇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만화다. 이 만화를 읽은 당신은 “여기 사람이 있음”을 다시한번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작품을 다시 한번 보자. 그제야 작품에 담긴, 윤필 작가의 유려한 문장과 재수 작가의 섬세한 필치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그림을 조금씩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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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 작성자 : 이재민
  • 작성일 : 2018/01/25 - 15:50
  • 소개글
2017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2019 한국콘텐츠진흥원 만화평론공모전 기성부문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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