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관계? 회복할 수 있을까? - 노인과 청년이 함께 살 때 - WIIZM WEBTOON (WEBTOON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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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우리 관계? 회복할 수 있을까? - 노인과 청년이 함께 살 때


영감

official icon 우리 관계? 회복할 수 있을까? - 노인과 청년이 함께 살 때

<영감(작가:없는 사람)>이란 웹툰을 추천받았다. 저스툰에서 연재되니 찾아보라는 주문이었다. 찾아보기 전까지 ‘영감(靈感)에 관한 판타지 정도’겠거니 예상했다. 그러나 그림을 보고 놀라고 스토리를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영화일 수밖에 없는, 영화를 옮겨놓은 듯한 수준급의 작품이었다. 영감은 노인이었고,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인간미와 유머가 녹아있다. 

 


 

<영감>은 혼자 사는 할아버지 집에 손녀딸이 난데없이 얹혀살면서 일어나는 일을 사실체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림 수준은 별 다섯. 매 컷이 마치 한국판 르네상스 미술작품을 보는 듯하다. 혹 영화를 그대로 만화로 옮긴 착각도 든다. 그림에 대한 칭찬이 과한 이유는 스토리 때문이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보면 작가는 글·그림에 있어서 전천후다.

 


 

우선, 제목이 주는 뉘앙스부터 보자. 주인공은 자존감을 잃은 노인, 어린 세대와 단절된 어른이다. 그런데 영감이라는 말은 예로부터 고위 관직자를 이르는 말이었다. 조선 시대 정삼품 이상 종이품 이하의 관직자를 영감이라 불렀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1급 고위공직자부터 장관급이다. 하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극존칭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마누라’가 부인을 낮춰 부르는 말로 사용되는 예와 같다. 과거에는 왕후나 세자빈을 일컬었던 말이 ‘마누라’였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작가가 ‘영감’에 주제의식을 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별  볼 일 없는 노인은 자존감을 회복해가는 한 인간으로 변화한다. 소외된 노인이 꿈을 가진 사랑스러운 영감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노인이 인구 절반을 차지하는 시대도 머지않았다. 이와 함께 독거노인 문제도 있다. 여러 대안이 나오는 추세인데, 그중 하나가 홈쉐어링이다. 노인과 청년이 한집에 살면서 공동체를 이루는 일이다. 그러면 서로 스토리를 중심으로 보완적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참고로 경향신문의 칼럼 <‘독거노인’과 ‘독거청년’이 만났을 때(이문재)>를 보기 바란다. 주인공 영감은 손녀딸 정화와 마찰을 빚는다. 20년 동안 보지 않았던 딸이 보낸 손녀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다. 더군다나 버릇없는 자퇴생이다.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는 일은 서로 곤욕이다. 영감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감은 정화에게 엄마의 행방을 묻는다. 그러나 정화는 엄마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한다. 영감이 알아낼 방법은 정화의 스마트폰뿐. 그런데 암호 때문에 이 또한 알아내기 어렵다. 노인이 자녀와 그 자녀의 관계를 확인하는 방법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는 점이 씁쓸한 메타포지만, 극적으로는 탁월한 설정이다. 영감은 정화가 럽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적인 사진들 속에 딸 수진의 행방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사고,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며, 사진술을 배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영감의 자의식은 깨어나고 자존감은 회복되어 간다. 이 작품의 묘미는 영감의 변화하는 모습에 있다. 사실체로 그려지는 영감의 표정이 울상에서 ‘웃상’으로 바뀔 때 나도 함께 웃었다.

 


 

사실 우리는 상대방을 대할 때 자기편에서만 생각한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내 탓보다는 네 탓이 크다. 독거노인 문제도 내 탓보다는 네 탓, 그러니까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홀로 된 노인만의 문제라는 인식이 높다. 사회도 가족도 해결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무언가 희망을 느낀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 나아가 가족과 사회를 화해시키는 해법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영감의 편에서, 정화의 편에서 그들이 가진 문제를 다룬다. 극중 인물이 서로 하기 힘든 일을 작가가 중재하는 셈이다. 가장 핵심적인 중재법은 관계의 회복이다. 영감과 정화의 관계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이야기는 기분 좋은 로맨스가 될 수도 있고, 우리의 꿈을 대신 실현해주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작가 ‘없는 사람’은 매회를 이어가는 능력도 뛰어나다. 다음 회가 기대되게 이야기를 끊는다. 영감을 점점 보고 싶게 만든다. 노랑머리 반항아 정화도 보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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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일
  • 작성자 : 새일
  • 작성일 : 2017/10/31 -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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