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콘텐츠 업계 전체에서 가장 뜨거웠던 뉴스는 네이버의 왓패드 인수였다. 네이버는 총액 6500억원 이상을 들여 왓패드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북미 출판 소식을 전하는 ‘뉴 퍼블리싱 스탠다드(The New Publishing Standard)’에서도 이례적으로 네이버웹툰의 소식을 전하면서 네이버웹툰의 북미 진출 전략을 상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콘텐츠 업계에선 합병은 생각보다 그리 많이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플랫폼사에 콘텐츠 제공자(CP)로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큰 플랫폼이 지분투자를 하는 식으로 공생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방식이다.

콘텐츠라는 분야가 가진 불확실성 때문에 정확한 가치를 매기기 어렵다는 점, 그래서 과대평가되기 쉽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고, 회사를 팔거나 투자를 받는 입장에서도 아쉬운 소리 하는 것 보다 콘텐츠 판매에 도움을 받는 게 이득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네이버가 굳이 6천억원 이상을 들여 왓패드를 인수한 이유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봤다.

 

* 소설이 지배했던 헐리웃

그러려면 먼저 과거로 돌아가봐야 한다. 지난 20년간 헐리웃을 지배했던 건 단연 마블이다. 그러면 그 시작에 있었던 ‘상수원’은 뭐였을까? 바로 소설이다. 21세기를 화려하게 열어젖힌 <반지의 제왕>시리즈(2001~2003)는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의 소설 원작 영화로 꼽히고, 그 뒤를 따른 <해리 포터>시리즈(2001~2011) 역시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성공적인 소설 원작 영화로 자리잡았다. 이 외에도 <다빈치 코드>(2006), <천사와 악마>(2009) 등의 댄 브라운 소설 원작 영화가 있었다. <트와일라잇>(2008~2012) 시리즈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케드릭 디고리를 맡은 로버트 패틴슨을 스타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 원작의 헐리웃 영화들.

 

2010년대가 되면 이 흐름이 마블로 넘어온다. 2008년 야심차게 포문을 연 <아이언 맨>(2008)에서 토니 스타크의 “I am Iron Man”이라는 대사는 MCU의 시금석이 되었고, 이후 우리는 마블의 시대를 살게 된다. 그리고 MCU는 역대 프랜차이즈 흥행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한 <스타워즈>와 <해리포터>의 흥행수익을 합친 것 보다 많은 수익을 올린다. <스타워즈>는 역대 흥행수익 약 92억달러(한화 약 10조 1,282억원), 3위 <해리 포터> 시리즈는 91억 달러(약 10조 181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MCU는 211억 달러(한화 약 23조 2,289억원)의 수익을 올렸을 뿐 아니라 역대 4위에 랭크된 ‘어벤저스’ 시리즈의 75억 달러를 포함하면 한동안 어떤 프랜차이즈도 범접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른 셈이다. 

 

* 마블코믹스는 왜 디지털 전환에 소극적일까

MCU 초기까지만 해도 스마트폰이 전세계의 넘버원 콘텐츠 플레이어가 아니었던 터라, <아이언 맨> 트릴로지(3부작)가 완성되는 2013년까지도 모바일 디바이스로 영상을 소비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OTT라는 말도 없던 시절에 이미 승기를 잡은 마블은 2010년대를 ‘마블의 10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블코믹스가 정식 앱으로 2012년부터 온라인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걸 잘 알지 못한다. 

 

2010년대를 지배한 MCU 영화들. 마블의 만화가 원작이다.

 

문제는 마블의 원작 작품들이 워낙 방대한데다 따라가기도 어려웠다는 점이다. 여기엔 이미 확고하게 자리잡은 소매점 중심의 판매방식, 소매점의 생태계가 걸려있다. 미국 전체 만화시장은 약 10억달러(한화 약 1조 1천억원)수준으로 평가받는데, 작은 시장에 소매점까지 걸려있다 보니 디지털화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빠르게 OTT 시장을 정복하고 디즈니로 복귀를 꾀하고 있는 마블이 원작을 디지털로 끌고 오는 것은 느릴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이미 디지털로 영화와 드라마, 밈(Meme)을 소비하는데 익숙해진 독자들이 원작을 디지털-모바일-을 통해 소비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인쇄소-유통사-소매점으로 이어지는 생태계의 일원이지만, 디지털 시대의 최대 콘텐츠를 다루는 입장에서 디지털 전환을 통한 새로운 시장 개척은 당연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블은 아예 MCU를 별개의 유니버스로 분리하면서 자체적인 ‘유니버스’를 구축해버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종이책 구독자는 MCU 구독자 전체의 일부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건 마블-디즈니 정도의 규모에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만화의 팬들이 ‘원작을 못 살렸다’는 말을 신경 쓸 이유가 사라졌다. 원작 팬덤보다 더 큰 팬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신, 디지털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감상 체제는 결국 MCU도 만들지 못했다.

 

* 디지털 중심의 소비, 2020년대

2020년대를 맞는 우리는 코로나19와 함께 오프라인 시대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거의 모든 콘텐츠가 디지털로 소비되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여기서 웹툰이, 그리고 특히 네이버웹툰이 왓패드를 인수한 이유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단순히 ‘있으면 좋으니까’가 아니란 얘기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책을 보고, 패드나 노트북으로(정확하게는 넷플릭스 등의 OTT를 통해) 영화를 감상하고, 소셜미디어로 그걸 공유한다. 디지털 세계 안에서 우리는 웹툰부터 영화, 게임까지 모든 콘텐츠를 구매하고 즐길 수 있다. 말 그대로 디지털 세계 안에서 심리스(Seamless) 경험이 구현되는 시대다.

반면 마블은 원작 이슈를 온라인으로 구매하더라도 매체가 바뀌는 경험을 해야만 한다. 애초에 출판 판형으로 만들어진 이슈는 태블릿PC 이상의 크기가 아니면 제대로 즐기기 힘들다. 스마트폰 최적화 콘텐츠인 웹툰과는 다르다. 디지털 세계에서, 웹툰은 영상(드라마, 영화), 게임, 소셜미디어까지 모든 콘텐츠와 한번에 이어지는 ‘디지털 네이티브’콘텐츠다.

 

2021년을 화려하게 장식한 <스위트홈>. 웹툰은 2020년대부터 시작이다.

 

네이버웹툰은 국내 기준으로 모든 수직계열화를 마친 플랫폼이다. 원작 소스가 될 웹소설과 웹툰은 네이버 시리즈와 네이버웹툰에서, 영상화는 스튜디오N이, 영상 콘텐츠 공급은 네이버 시리즈ON에서 할 수 있다. 이미 사례도 있다. 이 프로세스를 따라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전세계 동시 공개된 세 편의 애니메이션, <신의 탑>, <노블레스>, <갓 오브 하이스쿨>이다. 

해외를 기준으론 웹툰 플랫폼을 최초로 소개해 안정적으로 자리잡았고, 스튜디오N이 공동제작한 <스위트홈>으로 이름도 알렸다. 이제 세상은 네이버웹툰의 해외 브랜드인 ‘웹툰즈(Webtoons)’를 어느정도 알게 됐다. 포트폴리오 사이트인 ‘웹툰 스튜디오’도 제작했다. 국내랑 비교했을 때 부족한 건? 웹소설 플랫폼이다.

이미 네이버웹툰은 북미지역에서 급성장중인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Radish)’에 카카오페이지와 비슷한 시기에 투자를 진행한 바 있다. 웹소설 플랫폼을 찾아 콘텐츠 공급을 위한 투자를 진행하던 네이버웹툰이 찾은 건, 전세계 1위 기업 왓패드였다. 전세계 네이버웹툰의 월간 사용자(MAU)는 7,500만이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왓패드의 MAU는 9,000만명에 달한다.

 

* 심리스 콘텐츠 감상, 네이버웹툰의 테라포밍

왓패드의 MAU는 ‘웹소설 콘텐츠’에 익숙한 독자층을 의미한다. 네이버웹툰이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하기 위해 부족했던 마지막 카드를 손에 쥔 지금의 기업 가치를 논하는건 무의미하다. 전세계 1위 웹툰 플랫폼인 네이버웹툰과 전세계 1위 웹툰 플랫폼인 왓패드의 결합이 어떤 시너지를 낼지 아직까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왓패드는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플랫폼으로, 북미지역과 유럽 등지에서 출간 및 2차저작물로 제작된 콘텐츠만 1,000여 작품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들의 웹툰화 등 미디어믹스가 이뤄진다면 그 파급력을 쉽게 상상하긴 어렵다. 더불어 엄청난 IP를 순식간에 보유하게 된 것은 물론, 미디어믹스를 담당하는 스튜디오N 역시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무엇보다 스마트폰-태블릿PC 등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네이티브’ 콘텐츠 플랫폼을 꿈꾸는 네이버웹툰은 ‘심리스 콘텐츠 감상’을 위한 플랫폼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국내에서는 네이버웹툰에서는 웹툰만, 네이버 시리즈에서는 웹소설과 웹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네이버 시리즈ON에서는 영상을 볼 수 있지만, 콘텐츠간 이동을 하기 위해선 앱을 종료하고 다른 앱을 켜야 하는 ‘낮은 문턱’이 존재한다. 네이버웹툰은 이마저도 없애 '심리스 콘텐츠 감상'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웹툰-웹소설-미디어믹스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심리스’ 감상의 시대를 열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게 될까? 앱을 종료하고 새로 켜는 것 보다 한 앱에서 콘텐츠를 바꿔가며 감상할 수 있다면 보다 낮은 문턱으로 콘텐츠 소비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웹툰이 가진 콘텐츠는 ‘심리스 콘텐츠 플랫폼’을 꿈꾸게 한다.

 

영화 <마션>의 한 장면. 화성에서 감자를 키우는 것도 일종의 테라포밍이다.

이건 네이버웹툰의 그동안 해외 진출 전략과도 맞물린다. 네이버웹툰은 '웹툰'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미국 시장에서 7년간 고군분투하며 한국의 베스드토전 시스템인 '캔버스(CANVAS)'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며 현지 작가를 키워내고 있다. 네이버웹툰의 해외 진출 전략은 '진출'이라기보단 불모지에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하는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고 볼 수 있다. 아예 웹툰이라는 개념이 없는 지역에 가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그 개념을 이전의 시장 관점에선 존재하지 않던 황무지인 '디지털 네이티브' 콘텐츠 소비자들에게 전파하는 것. 네이버웹툰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심리스 콘텐츠 플랫폼’에 가장 앞서 있는 건 디즈니다. 보다 모바일 친화적인 환경에서 원작 콘텐츠들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든다면, 디즈니+는 심리스 콘텐츠 플랫폼에 가장 가깝다. 넷플릭스 역시 원작을 직접 제작해 서비스하고 싶은 욕심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왓패드를 인수한 지금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디지털 네이티브 원작 콘텐츠를 가진 기업은 네이버웹툰이다. 김준구 대표는 2019년 “네이버웹툰을 아시아의 디즈니로 키우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네이버의 왓패드 인수로 분명해졌다. 우리는 디즈니에 맟설 거대한 기업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다. 너무 허황된 분석이라고? 불과 10년 전까지 우리는 넷플릭스의 존재조차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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