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결국 될 작품이 되고, 될 작가가 된다. 그런데 뭐가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열심히 하는 거다.”라고요. 에디터는 이 말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부 맞는 말은 아니지만, 절반 이상은 맞는 말입니다.

저 말의 틀린 부분은, 상업 작품에 한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업작품 중에서도 무엇이 잘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이 필요합니다. 독자라는 거대한 집단이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보고싶어 하는지, 그리고 나아가 무엇을 욕망하는지를 알아야 그들에게 보여줄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고, 선보일 수 있죠.

그래서 지금도 웹툰 작가들과 제작사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 기획과 준비, 그리고 상상을 펼칩니다. 하지만 그건 주로 작품에 한정되어 있죠. 플랫폼 운영에서는 그보다 긴 기간의 계획이 필요합니다. 플랫폼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덕목 중 하나가 안정적 운영인 만큼, 긴 기간동안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겠죠. 분기 단위, 연 단위, 그리고 그보다 긴 프로젝트 단위의 계획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 2004년부터 시작된 36년의 계획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에 가장 긴 계획은 네이버웹툰이 가지고 있습니다. 김준구 대표가 2004년, 네이버웹툰을 시작하면서 세운 계획입니다. 2021년 2월 16일자 조선일보 박건형 기자와 김준구 대표의 인터뷰를 보면, ‘총 36년 계획의 절반이 지났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바로 이게 오늘 이야기할, 네이버웹툰의 36년지대계입니다. 이 36년 계획은 처음 네이버가 웹툰을 한다고 했을 때, 만화 시장이 무너지고 있었던 데다 당장 원고료도 적은 네이버웹툰을 믿어주지 않았던 작가들을 설득할 때 12년씩 3단계 계획을 보여준데서 시작합니다. 

 

  

조선일보 “아시아의 디즈니 36년 로드맵, K웹툰 세계정복 절반쯤 왔다” 

 

첫 12년, 그러니까 2016년까지의 계획은 ‘유료화’였습니다. 네이버웹툰은 2013년 4월 PPS(Page Profit Share)를 도입했고, 2013년 6월 4일 연합뉴스의 기사를 보면 첫 달 매출액은 5억 9천만원, 그 중 수수료를 제외한 온라인 광고 수익이 2억 9천 289만원이었고, 미리보기나 완결작 다시보기 판매 매출액은 4천 874만원으로 작가에게 돌아간 수익은 70%인 3,411만원입니다. 광고수익을 포함해 당시 네이버웹툰에 연재중이던 작가 108명으로 나누면 인당 255만원이 나옵니다. 위 기사에 나오는 ‘한성숙 네이버서비스1본부장’이 얼마 전 퇴임한 네이버의 CEO라는 점이 재밌네요.

그리고 2016년까지 레진코믹스의 등장과 함께 찾아온 플랫폼 춘추전국시대가 열리면서 유료화 모델이 안착하기 시작합니다. 게시판에 올라오던 이미지였던 웹툰이 ‘돈 주고 볼 가치가 있는’ 콘텐츠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단계였죠.

조선일보의 인터뷰에서는 이후 2단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미 지나간 역사가 된 첫 12년을 제외하면, 나머지 2단계는 현재진행형이거나 미래이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부터는 그동안 드러난 것들, 그리고 그것을 종합했을 때 보이는 것들을 모아서 미래를 한번 더듬어 보겠습니다.

 

* IP확장, ‘아시아의 디즈니’로 가는 길

흔히 콘텐츠 업계에서 ‘사기꾼 거르는 법’이라며 우스개처럼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에 ‘디즈니’, ‘마블’ 들어가면 일단 의심하라”는 말이죠. 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지만, 현실에 비해 너무 큰 꿈을 꾸는 사람들을 경계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2019년 이후 웹툰계에서 매년 ‘아시아의 디즈니’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36년 계획을 이야기한 네이버웹툰의 김준구 대표입니다. 이 말은 2016년 소프트뱅크벤처스와 네이버가 펀드를 조성할 때 처음 나왔던 말인데, 그 다음에는 2019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왜 하필 2019년이었을까요?

자, 2017년부터 시작되어 2029년까지 이어질 ‘두번째 12년’의 핵심은 IP확장입니다. 이건 지금 너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보일 정도로 선명하죠. 이걸 통해 보면 왜 2019년이었는지가 드러납니다. 2019년 네이버웹툰에선 본격적으로 제작사들의 작품이 연재되기 시작합니다. <여기가 씨름부입니까>(1월, 투유드림), <귀전구담> 시즌2(7월, LICO), <텃밭부 사건일지>(8월, LICO)등 개인 창작자의 작품만 연재되던 네이버웹툰에 본격적으로 ‘제작사 작품’이 연재되기 시작했습니다.

  

웹툰에서는 제작사 작품을 통해 안정성과 IP수급능력을 높였다면, 그걸 직접 확장하는데도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합니다. 분사와 함께 만들어진 스튜디오n이 본격적으로 제작역량을 키워나갔죠.  공교롭게도 그 시기 역시 2019년입니다. 2019년 8월 31일 방송된 <타인은 지옥이다>의 드라마를 공동제작한 네이버웹툰의 자회사 스튜디오n은 이후 지금까지 제작 예정작을 포함해 시리즈 15작품, 영화 11작품, 애니메이션 3작품 등 총 29작품을 공동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앞선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보면 2021년 2월 당시까지 영상화 작품이 77작품이니까, 40% 정도를 스튜디오n이 담당하고 있는 셈이죠.

 

* 그리고 더 큰 그림, 왓패드와 CJ

제작사 작품 수급을 통해 웹툰 IP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스튜디오n을 통해 영상 제작 능력을 키운다. 이게 네이버웹툰이 IP확장을 위해 그리고 있는 밑그림입니다. 이렇게 밑그림을 그리고 있던 2020년 10월, 모기업인 네이버와 CJ는 약 6천억원 가량의 지분교환을 성사시킵니다. 네이버는 CJ그룹의 계열사인 CJENM, 스튜디오드래곤과 각각 1,500억원, CJ대한통운과는 3천억원가량의 지분을 교환했습니다. 여기엔 네이버의 역점사업인 쇼핑을 위한 물류, 그리고 콘텐츠에 과감한 투자를 통해 파트너쉽을 만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CJ는 CJENM 뿐 아니라 티빙이라는 국내 OTT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스튜디오드래곤은 국내 최고의 제작역량을 갖춘 곳이죠. 그렇게 티빙에서 공개된 네이버웹툰 원작 드라마는 <유미의 세포들>, <내과 박원장>, <백수세끼>등이 있고, 여기에 기대작인 <방과후 전쟁활동>이 준비중입니다. 이 사이사이에 네이버웹툰은 <신의 탑>, <갓 오브 하이스쿨>, <노블레스> 애니메이션을 공개하기도 했죠.

2021년 1월에는 네이버웹툰이 6천억원을 들여 왓패드를 인수합니다. 북미지역 최대 웹소설 플랫폼이라는 왓패드를 인수하면서, 네이버웹툰은 글로벌 플랫폼으로의 본격적인 확장을 꾀하고 있죠. 인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이후에는 ‘왓패드웹툰스튜디오’를 설립, 북미지역 IP확장 전진기지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 ‘왓패드웹툰스튜디오’의 역할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습니다. CJ ENM이 파라마운트를 소유한 바이아컴과 콘텐츠 제작 협력을 약속한 다음 날, 네이버웹툰 역시 파라마운트와 제작 협력을 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더불어 CJ ENM이 1조원을 들여 인수한 엔데버콘텐츠와는 활발하게 교류할 판이 깔려 있으니, 이제 12년 계획의 2단계, IP확장을 글로벌하게 추진해 볼 가능성은 열려 있는 셈입니다.

 

* 거대한 탑 보단 여러 개의 기둥

자, 이제 글로벌 IP확장 체인은 깔려 있습니다. 일본과 동남아에는 라인망가, 북미와 유럽에는 웹툰즈(Webtoons)가 나가 있고, IP확장을 위한 스튜디오n과 왓패드웹툰스튜디오 역시 준비됐습니다. 배급을 위한 티빙, 파라마운트는 물론 기존의 확장을 책임졌던 넷플릭스도 있죠. 이제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당연히 IP입니다. 확장을 위한 판이 깔려있어도 IP가 없으면 말짱 꽝입니다. 여기서 다시, 왜 하필 ‘아시아의 디즈니’일까? 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디즈니 산하에는 디즈니+를 비롯해 내셔널 지오그래픽, 히스토리 채널, FOX, 마블, 루카스필름, 픽사 등 수많은 기업이 속해 있습니다. 

네이버웹툰은 단순히 ‘웹툰의 IP확장’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IP를 안정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사업환경이 필요합니다. 2019년 만화의 날, 네이버웹툰의 김준구 대표는 현장에서 제작사 작품이 늘어나는데 대한 우려를 표하는 질문을 듣고 “재미있는 작품만 있다면 향후 10년간은 개인 창작자 분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10년 뒤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 뒤를 예측하는건 무의미하다는 취지의 말도 함께 전했죠.

 

  

 

그리고 실제로 2019년 이후 네이버웹툰은 개인 창작자들 위주의 스튜디오에 투자해 스튜디오를 만들고 있습니다. 2021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네이버웹툰이 투자한 기업 목록을 살펴보면 총 14곳의 웹툰 제작사에 투자했습니다. 이 중 개인 창작자가 중심이 된 스튜디오는 9곳(2곳은 추정)으로 절반이 넘습니다. 자회사를 포함해 네이버웹툰이 공시한 투자처는 28곳인데, 그 중 절반이 웹툰 제작사고, 그 절반이 넘는 곳이 개인 창작자인 셈입니다.

지금까지 종합해 보면 네이버웹툰은 웹툰이라는 거대한 탑 보다, 개인 창작자 스튜디오를 많이 만들고 투자해 여러 개의 기둥을 세우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 많은 작품을 안정적으로 수급하는 한편으론 네이버웹툰에 꼭 필요한 작가들의 아이덴티티를 보전하는 방향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론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네이버웹툰의 입맛에 맞게 편성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떻게 볼 지는, 물론 독자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자, 공교롭게도 김준구 대표가 2019년에 말한 ‘10년 뒤’는 2029년입니다. 2016년에 시작된 ‘두번째 12년’이 끝나고 ‘세번째 12년’이 시작되는 시간이죠.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유료화, 2017년부터 2029년까지 IP확장이 키워드라면 세번째 키워드는 무엇이 될까요? 그건 디즈니를 살펴보면 알 수 있겠죠.

디즈니는 자체적으로 기획, 제작, 유통, 배급, IP확장까지 모두 관리하는 초거대 기업입니다. 3번째 12년의 키워드는 ‘오리지널’이 아닐까 싶습니다. 네이버웹툰이 만들어낸 세계관 안의 수많은 기둥들, 지금 투자를 받은 개인작가 스튜디오를 포함한 회사들이 ‘작은 마블’이 되어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IP를 확장해 유통하는 채널과 굿즈 등 사업까지 모두 관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성급한 판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네이버웹툰은 이미 웹툰 전문 굿즈샵 ‘웹툰프렌즈’를 운영중이고, 텀블벅에서 벌써 오디오드라마를 포함한 콘텐츠 48종을 오픈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게 자리를 잡으면 정말 디즈니랜드처럼 네이버웹툰 테마파크도 꿈은 아닐지 모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운영에 차질은 있었지만 강남역 인근에 ‘웹툰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했었고, 여러 기업과 제휴해 방탈출 카페에 네이버웹툰 IP가 활용된 적도 있거든요. 그 때가 되면, 또 우리는 어떻게 웹툰을 평가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물론 36년은 긴 시간입니다. 에디터가 살아온 시간보다 깁니다. 천문학자를 꿈꾸던 아이가 자라서 천문학이 이과라는 걸 알게 되고, 본인이 문과라는 걸 깨닫고 번역을 공부하다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번역의 미래가 불투명하니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결심을 하고, 그 다음 다시 만화평론가로, 웹툰 전문지의 에디터로 일할 만큼 긴 시간보다도 깁니다.

다시 한 번,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계획은 필요하죠. 오늘은 네이버웹툰의 계획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여러분은 네이버웹툰의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럼, 에디터는 다음 칼럼을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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