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아이, 로봇>을 기반으로 만든 2004년 영화 <아이, 로봇>을 보신 분이라면 델 스푸너(윌 스미스 분)과 로봇 NS-5의 대화를 잊지 못할 겁니다. 자신을 설계한 사람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NS-5는 델 스푸너에게 다른 사람에게 윙크한 것의 의미를 묻습니다. 델 스푸너는 "신뢰의 표시"라고 답합니다. 인간만의 것이라 너(로봇)은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요. 공포에 질려 설계자, 즉 레닝 박사의 살해현장에서 숨어 있었다는 NS-5에게 "공포는 인간의 것이고, 로봇에게는 감정이 없다"며 일갈합니다.

그리고 델 스푸너는 "로봇이 교향곡을 쓸 수 있나? 로봇이 아름다운 걸작을 그릴 수 있나?"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NS-5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까?"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 현대사회, 무슨 기술들은 엄청나게 빠르게 발전한다고 하는데 그게 뭔지 알아볼 여력은 없는 우리들을 위해 준비한 기획입니다. “바쁘다바빠 현대사회” 세 번째 시간은 NFT, 메타버스를 넘어 인공지능입니다. 이미 일상 깊숙이 파고든 인공지능은 과연 웹툰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알아봅니다. 

 

* 인공지능의 종류와 학습방법: 머신러닝, 딥러닝, 강한 인공지능과 약한 인공지능

인공지능은 말 그대로 인간이 만든 지능이라는 뜻입니다. 인간과 같은 수준의 사고체계를 갖추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합니다. 이를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 기계 학습)이라고 부릅니다. 딥러닝(Deep Learning)은 이 머신러닝의 한 방법으로,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 즉 빅데이터를 기계에게 제공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많은 데이터 속 패턴을 발견해 마치 인간이 사물을 분류하는 것처럼 나누도록 합니다. 바로 인공신경망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는 또 지도 학습과 비지도 학습으로 나뉘는데,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고 인공지능에게 ‘이건 고양이야’하고 알려주는 것이 지도 학습,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고양이와 개를 분류하고, 무엇이 고양이인지 알아내도록 학습시키는 걸 비지도 학습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공부한 인공지능을 ‘강한 인공지능’과 ‘약한 인공지능’으로 분류하는데, 강한 인공지능은 일반적으로 인공지능이 스스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직은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고, 약한 인공지능만이 존재합니다. 이세돌 기사를 이긴 알파고를 두고 “이정도면 강한 거 아니야?”라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파고는 사실 바둑 말고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다고 하네요. 그래서 강한 인공지능으로 분류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만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니 ‘인공지능이 직접 만화를 만드는 것’을 강한 인공지능으로, ‘인간이 만화를 만드는 걸 돕는’것을 약한 인공지능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 만화를 어떻게 그린다는 것이여

그럼, 인공지능이 만화를 그린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야기해 보죠. 말 그대롭니다. 인공지능을활용해 만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걸 이야기합니다. 강한 인공지능은 직접 스토리를 짤 테고, 콘티를 만들 테고, 동시에 그걸 작화로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심지어는 인공지능간의 협업이 가능할수도 있겠죠.

약한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그동안 그려왔던 나의 펜선 데이터를 활용해 Ctrl+Z, 실행취소 없이 한번에 내가 원하는 선이 나오도록 보조하는 도구라던지, 밑색을 미리 넣어주고 색 조정을 하면 자동으로 명암을 넣어주거나, 콘티 단계에서 펜선을 자동으로 완성해주고 인간은 그걸 수정만 하면 되는 사례들이 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빅데이터를 활용한 분석툴을 활용, 그동안 인기가 있었던 작품과 이전 사례들과 비교했을 때 앞으로 인기가 있을 장르를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개인의 감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데이터에서 읽어낼 수도 있을 겁니다. 그 판단은 인공지능이 내리고, 결과를 실행하는 건 인간이 되겠죠. 

우리는 강한 인공지능만 들여다보고, 강한 인공지능에 대해서만 걱정하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건 타당합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과 연결된 인공지능이 만화를 만드는데,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자기가 스스로 인기가 있을만한 작품을 만들고, 그리기로 결정을 내린 다음 업로드를 해서 올린다면 그건 창조성의 발현이지 않을까? 하는 거죠. 그렇다면 작가의 위치를 위협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진짜로 나오게 되지는 않을까? 설마 이미 직접 나온건 아닐까? 아니, 애초에 우리가 통속에 든 뇌고 인공지능이 전기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라면?

 


물론 이세돌 기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끝없이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사실 진짜 걱정해야 하는 건 약한 인공지능일지도 모릅니다. 강한 인공지능은 일종의 ‘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면, 약한 인공지능은 시키는 걸 완벽하게 수행하기 때문이죠. 알파고 역시 바둑밖에 둘 줄 모르는 인공지능이지만, 인류 중에 바둑으로 알파고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 알파고를 이긴 건 이세돌 기사가 유일하죠. 그럼 ‘스토리를 창작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어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여기엔 웹소설 웹툰화라는 좋은 대안이 있습니다. 웹소설을 웹툰으로 번안하는 작업만을 마스터한 인공지능이 나온다면(물론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웹소설과 캐릭터시트를 넣어주면 자동으로 작품을 만들어주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생각만해도 오싹해집니다.

 

* 오늘까지의 인공지능

 

이렇게 색을 입혀놓으면(좌), 채색된 그림(우)를 만들어준다

 

걱정은 그만 하고, 이제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아봅시다. 지금까지는 약한 인공지능 중에서도 아주 기본적인 것들만 나오는 단계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클립스튜디오가 자랑해 마지않는 자동 채색 툴일 겁니다. 클립스튜디오에서는 이미 2018년 1.8.4 버전 이후 자동채색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자동채색 기능은 사람이 레이어별로 밑색을 깔아주면 거기에 맞춰 채색을 해 주는 기능입니다. 이 기능이 출시된 이후 운영사인 셀시스는 클립스튜디오 판매량이 500만장을 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네이버웹툰의 W리서치에서 발표한 채색 및 명암 도구

 

2019년 ICCV라는 행사에서 네이버웹툰은 레이어 분리도 없이 그냥 색깔 점을 찍어 두면 알아서 자동채색을 하는 프로그램 시연을 공개했습니다. 점을 찍고, ‘채색하기(Colorize)’ 버튼을 누르고, 인공지능이 판단해 색을 칠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30초가 걸리지 않았습니다. 네이버웹툰의 AI 기술을 개발하는 W리서치는 이런 프로그램뿐 아니라 아예 콘티를 넣으면 그림체를 파악해 자동으로 원고를 완성해주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기도 합니다. 

 

코믹 블라스트의 시연 영상 캡처. 워드 파일(위)를 넣으면 콘티(아래)가 나온다

 

또 지난 어도비의 신제품 발표회에서 예고한 어도비의 코믹 블라스트(Comic Blast)가 있습니다. 코믹 블라스트는 글콘티를 넣으면 칸을 나누고, 자동으로 칸을 나눠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 스케치를 넣으면 펜선을 넣을 수 있고, 스토리에 분기를 넣어서 분기별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인공지능으로 순식간에 진행됩니다. 시연했던 영상을 보면, 규모가 큰 파일을 추출하는 것 보다 훨씬 빠르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으로 학습한 인공지능이 얼개를 짠 <파이돈>

 

심지어는 작품을 만든 경우도 있습니다. ‘데즈카 오사무 사후 31년만에 신작’으로 홍보한 <파이돈>이 그것인데, 일본의 잡지 ‘모닝’에 공개된 바 있습니다. ‘데즈카 2020’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키옥시아(Kioxia)라는 도시바의 계열사와 데즈카 프로덕션이 힘을 합쳤습니다. 데즈카 프로덕션이 제작에 참여해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 65점을 반복적으로 학습시킨 후, 차기작에 대해 질문했을 때 내놓은 답을 토대로 인간이 스토리를 다듬고, 작화를 그려 완성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인공지능이 해야 할 역할을 하고, 인공지능이 해야 할 역할을 인간이 한 셈이죠. 일단 알려진 바 대로라면 인공지능은 이야기의 플롯, 캐릭터 디자인 등의 큰 틀을 만들고 인간은 그것이 ‘말이 되도록’ 각색하는 작업을 맡았습니다. 

 

* 인공지능이 우리를 지배할 때…가 올까요?

예시로 언급한 인공지능들은 모두 ‘약한 인공지능’ 중에서도 아주 약한 축에 속합니다. 그리고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시점을 ‘특이점’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특이점에 도달한 바로 그 시점에서는 특이점을 인지할 수 없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특이점을 이미 지나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만 많은 이들이 경계하는 ‘강한 인공지능’뿐 아니라 약한 인공지능 역시 충분히 우리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일만 처리하는 약한 인공지능이라 할 지라도 아주 다양한 학습과 고도화된 알고리즘이 탑재된 인공지능을 사람이 연결시켜 활용하는 것 만으로도 가공할 만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리 멀지만은 않은 길일지도 모릅니다.

인공지능 자체는 사실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개발된 인공지능을 소수가 독점하고, 압도적인 효율을 앞세워 그 세를 넓혀 가기 시작할 때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새로 창작을 공부하고 작가가 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질지도 모릅니다. 이런 날은 아마 오지 않겠지만, 최악의 상상을 해 보자면 인간 작가는 더 훌륭한 인공지능 작가를 위한 데이터를 만드는데 필요한 데이터나 만들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희망적입니다. EU에서는 인공지능 개발에 있어 지켜야 할 포괄적 윤리강령에 해당하는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이 법안에는 1) 용납될 수 없는 위험(Unacceptable Risk), 즉 인간의 안전이나 생계와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인공지능 개발을 금지하고, 2) 고위험(High Risk), 즉 안전이나 기본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품 안전, 생체 인식 및 분류, 주요 인프라 관리 및 운영, 교육과 직업의 훈련, 고용 및 직원 관리, 주요 민간 및 공공서비스 접근과 이용, 법 집행, 이민과 국경 통제, 사법업무에 연관된 경우 시장에 출시하기 전 엄격한 검증과정을 거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또한 3) 제한된 위험(Limited Risk)의 경우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공지능의 경우 투명성 의무가 부과됩니다. 하지만 스팸 필터, 게임 등은 규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지만, 우리는 준비할 수 있습니다. 다만, 미리 알아야 준비할 수 있겠죠? 오늘의 칼럼은 인공지능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우리는 어떤 것들을 유심히 살펴봐야 할 지 짚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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