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아주 빨리 변하는 시절이라 ‘구독경제’라는 말도 이미 옛말이 됐다. 정액제 구독모델은 넷플릭스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콘텐츠 업계에도 관심사가 됐다. 유튜브도 구독모델인 ‘유튜브 프리미엄’을 내놓았고, OTT 서비스는 이제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불과 3년만에 벌어진 변화다. 구독 이전을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 벌써 ‘옛날에는 하나하나 사서 봤다고?’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다. 그럼, 웹툰은 어떨까? 가정을 통해 미래를 한번 살펴보자.


* 정액제 구독모델을 도입한 곳들

 


 

작년 고단샤 등 12개 출판사가 연합해 출범한 ‘망가모’는 일본 만화를 구독모델로 만나볼 수 있는 서비스다. <진격의 거인>, <아인>, <일곱개의 대죄>등 대작을 비롯해 300작품을 무제한으로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일본을 제외한 글로벌 서비스로 출범했고, 아직까진 라이선스 문제로 일부 언어만 제공하고 있지만 서비스 범위를 넓힐 것이라고 예고했다.

리디에서도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구독모델을 활용한 서비스인 ‘만타(Manta)’를 통해서다. 만타는 리디에서 서비스중인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북미지역에 먼저 서비스를 시작했다. 김수지 작가 원작 <상수리 나무 아래>가 인기작이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이후 메인 화면을 로딩할 때 공개하는 뷰는 927만뷰가량이다. 3월 8일 기준 73작품이 연재중이고, 리디에서 독점 연재되는 작품뿐 아니라 최가은 작가의 <저승GO>, 송 작가의 <미슐랭스타>등 비독점작도 서비스되고 있다. 두 서비스 모두 광고 없이 무제한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가격도 4.99달러로 동일하다.

이 외에도 투믹스의 글로벌 서비스는 주간/월간 정액모델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구독모델은 개별 결제모델에 비해 높은 사용자 숫자가 필요하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수백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필요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공만 하면 확실한 시장의 지배적 지위를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선제적으로 구독모델을 도입해 가입자를 모으는 방식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는 ‘네이버 플러스’를 내놓은데 이어 유료 뉴스 구독서비스도 준비중이다. 기성 언론사뿐 아니라 전문 콘텐츠 창작자 10팀이 합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당 결제, 언론사, 창작자별 월간 구독 서비스등을 모두 포괄한다. 콘텐츠에서 규모를 가져간 곳이나, 시장의 선점을 원하는 곳에서 구독서비스를 내놓는 것은 이젠 일상이 됐다.


*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의 자동충전 도입의 의미

네이버웹툰은 올해 초, 카카오페이지는 2020년 가을에 각각 자동충전 시스템을 도입했다. 자동충전 시스템은 특정 조건을 사용자가 설정해 놓으면 자동으로 캐시를 충전하는 시스템이다. 카카오페이지는 3천원부터 10만원까지 설정할 수 있고, 보유 캐시 또는 지정일에 자동으로 캐시를 충전하는 방식이다. 

 

 

네이버웹툰의 자동충전 역시 네이버웹툰에서 사용되는 재화인 쿠키의 개수, 또는 지정일에 자동으로 충전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독자들이 작품을 감상하다가 ‘쿠키(또는 캐쉬)가 부족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고, 충전하러 갔다가 튕겨져 나가는 것을 막고 편안한 감상을 넘어 끊김 없는, 조금의 걸림돌도 느끼지 못하는 감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서비스다. 재화가 부족할 때 백그라운드에서 자동으로 충전되어 감상을 끊지 않아 더 높은 몰입도를 기대할 수 있다.


* 자동충전의 미래는 구독모델일까?

자동충전은 독자, 즉 소비자의 몰입감을 해치지 않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수단이다. 동시에, ‘지정일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액제를 떠올리게 한다. 매달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액수를 충전하는 독자들은 물론이고 자동충전으로 높은 금액을 매달 사용하는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서비스와 비교를 할 수밖에 없다. 또, 전통적으로 웹툰과 만화는 ‘싼 가격’으로 승부하는 매체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동충전이 정액제로 가기 위한 초석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정액제 모델로 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아닌 구독자 숫자다. 네이버는 ‘네이버 플러스’에 가입한 구독자들에게 네이버웹툰 쿠키 49개를 선택지에 포함시켰다. 여기에 자동결제를 추가해 독자들의 결제경험 데이터를 보다 세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자동결제를 만들어 놓으면 개별 작품의 객단가 상승에 대한 반발도 줄일 수 있다. 나도 모르게 결제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한달 무료’ 전략이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0 만화 이용자 실태조사

 

그동안 국내에서는 구독모델을 유지하기엔 구독자 숫자가 적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글로벌 플랫폼 구축이 어느정도 완성되어가는 2021년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콘텐츠진흥원이 발행한 2020 만화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유료 이용경험이 있는 독자 43.6% 중 월 5천원 이상을 지불하는 이용자는 48.6%에 달했다. 글로벌 환경이 한국의 경우와 모두 똑같다고 가정했을 때, 현재 네이버웹툰의 MAU(월간 이용자)인 8,200만명을 기준으로 ‘유료 이용자’에 해당하는 독자는 3,572만명에 달한다. 그 중 5천원 이상을 지불하는 독자들이 가입한다고 가정하면 이 중 48.6%에 해당하는 1,737만명이 가입한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이들이 모두 가입한다고 가정하고, 네이버 플러스가 제공하는 49개의 쿠키, 즉 4,900원을 기준으로 결제액을 계산해보자. 이 때 네이버웹툰이 전세계 구독자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은 한달에 851억원가량이다. 1년으로 계산하면 1조원이 넘는다. 네이버웹툰이 밝힌 2020년 거래액 8천억원보다도 높다. 심지어 이 돈은 거래액이 아니라 독자들이 네이버웹툰에 지불한 돈이다. 네이버웹툰의 2020년 거래액 8천억원 중, 수수료와 세금, 작가 쉐어 분을 제외하고 네이버웹툰에 떨어지는 돈은 3천억원이 채 되지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정액제 서비스는 일부 수수료를 제외하면 모두 네이버웹툰의 수익으로 잡힌다.

 

* 현실적 문제

플랫폼 입장에선 이뤄지기만 하면 너무나 달콤한 모델이다. 더군다나 구독모델은 불법 공유 콘텐츠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이미 음악, 영상 등의 콘텐츠 분야에서 증명되기도 했다. 그럼 왜 ‘완전 정액제’모델을 지금 당장 도입하지 않을까? 작가의 생계와도 연관된 현실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저작권 문제가 걸려있다. 

현재 웹툰은 작가에게 연재를 통한 ‘전송권’을 위임받은 업체가 결제를 대행하고, 거기서 발생한 수익을 작가와 나누는 시스템이다. 웹툰의 가장 ‘핫한’ 지점 역시 연재중인 콘텐츠에서 나온다. 플랫폼은 작가와 저작권으로 발생한 수익을 나눠야 하는데, 정액제 모델로는 이걸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의 계약방식은 연재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하다.

또한 서비스 기간에 따른 금액 역시 기준이 없다. 영구적 서비스를 한다면, 그건 다름아닌 매절계약이다. 매절계약은 추가 인센티브 없이 한번에 약속된 돈을 쥐어주고, 수익쉐어는 하지 않는다. 다음 작품의 계약이나, 서비스 연장계약을 할 때야 반영될 수 있다. 작품의 성과는? 플랫폼이 공유해주지 않으면 작가는 감만 잡을 뿐이다. 물론, 뉴스 서비스의 경우처럼 개별 작가 구독서비스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다면 지금의 무료 모델과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에서는 <나는 100만명의 목숨 위에 서 있다>가 유료/무료를 구분하는 시도를 했었지만, 결과적으로 큰 반향은 얻지 못했다.

 

* 이미 성공한 모델: 넷플릭스와 엑스박스 라이브, 이모티콘 구독

이런 방식을 적용하는데 성공한 대표적인 곳이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첫번째 문제, 저작권을 2년 기간제 계약 방식으로 해결했다. 특정 기간동안 서비스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구독자들이 찾지 않는 작품은 계약을 해지하고, 이용율이 높은 작품은 계속해서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넷플릭스에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작품이나, 한때 서비스됐다가 사라진 작품들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물론, 웹툰에도 이렇게 기간제 서비스로 제공되는 경우가 있다. 주로 독점으로 연재한 완결작을 다른 플랫폼에 서비스하는 비독점 서비스다. 특정 기간동안 서비스하면서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받고, 수익을 나눠받는 방식인데, 넷플릭스의 기간에 대한 비용을 한번에 제공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소장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정액제 모델이 그리 탐탁치 않을 수도 있다. 소장과 구독, 모두를 제공하는 서비스로는 엑스박스 라이브, PSN+ 등의 게임 분야와 카카오톡 이모티콘 구독 모델이 있다. 이들 서비스들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접근하는 방법을 제공하면서 개별 상품의 소유를 위한 구매 역시 제공한다. 웹툰 역시 이런 모델이 가능하다. 연재작품에 대한 접근권과 완결작의 소장 모델은 이미 나뉘어져 있다. 여기에 구독 모델을 붙인다면 가능한 모델이 된다.

넷플릭스의 조건에 맞게 작품을 만들었던 제작사들은 두번째 작품을 만들 때 “넷플릭스가 작품의 성적을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아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엑스박스 라이브나 카카오톡 이모티콘의 경우에도 일정 수익은 보장되지만 추가 수익의 기회가 막혀버린다는 점을 주요한 불만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들 서비스의 전제조건은 개인 창작자가 아닌 회사대 회사(B2B)의 거래라는 점이다. 더군다나 영상이나 게임은 애초에 완성된 작품을 서비스하거나, 최소한 한 시즌의 길이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웹툰은 연재를 기반으로 하고, 개인 작가의 연재는 시리즈의 길이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아예 완성된 시놉시스로 제작을 하는 방식, 그러니까 기획작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다. 

 

* 개인작가가 플랫폼에서 사라진다면?

비독점작품을 서비스하는 것은 넷플릭스에게도 양날의 검이다. HBO가 HBO MAX를 만들면서 <왕좌의 게임>이나 <더 와이어>, <실리콘 밸리> 시리즈는 아예 넷플릭스에 서비스하지 않았고, ABC의 인기 시리즈 <오피스> 등도 넷플릭스에선 서비스하지 않는다. 이런 환경 때문에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IP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직접 완성도 높은 작품에 투자하고, 완성된 작품은 넷플릭스가 IP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영구적인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웹툰 플랫폼에서도 독점작을 넘어 플랫폼이 IP를 공유하거나 확보한 ‘오리지널’ 작품을 선보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카카오는 연담 등의 자체 레이블이나 지분투자를 통해서, 네이버웹툰은 작가 스튜디오에 투자하는 한편 LICO 등의 제작사를 만들고, YLAB 재팬을 인수하는 등 직접 IP를 서비스할 방법을 늘려가고 있다. 업체가 IP를 보유한 작품을 플랫폼과 거래하는 것은 개인작가에 비해 수월하고, 안정적이다. 뿐만 아니라, 영상화 등 판권계약에서도 플랫폼에 유리한 지점이 있다. 특히 거대 플랫폼들은 웹툰만 아니라 웹소설, 영상 등 IP확장 콘텐츠 역시 모두 서비스할 수 있도록 체질을 바꾸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플랫폼은 지배적인 위치를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싶어하고, 적어도 지금까진 독자를 모아두는 데에는 정액제 모델이 규모만 있다면 가장 효율적이다. 결국 플랫폼이 지금부터 정액제로 가겠다고 선언하고 작가들에게 그것이 필수라고 요구한다면, 작가들에겐 선택지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의 위치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계약의 변경뿐 아니라 작가가 가질 (안 그래도 부족한)협상력도 같이 소멸한다는 점이다. 

이 모든 과정이 한번에 진행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조는 이미 보이고 있다. 점차 개인 작가의 작품이 줄고, 업체들이 보유한 IP로 제작하는 작품이 늘어나는 과정을 이미 겪고 있다. 카카오페이지의 오리지널 작품은 1천작품이 넘었다. 

 

단순히 유통이 아니라 IP를 직접 관리하기 위한 플랫폼의 노력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충분한 숫자가 확보될 가능성이 있다면 정액제는 너무나 큰 메리트를 가진다. 이렇게 개인 작가가 설 입지는 점점 좁아진다. 개인작가가 플랫폼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어쨌든 웹툰 ‘시장’은 공고할 것이다. 그러면 다 괜찮을까? 모든 것은 가정이지만, 과연 이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거대화 된 플랫폼과 협상력을 갖추기 위해서, 작가들은 어떤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부터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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