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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만화는 예술입니까?

외부필진 조익상

그래서, 만화는 예술입니까?

외부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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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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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OPINION

“만화는 예술입니까?” 구닥다리 질문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유효한 물음이라 생각하고 던져 봅니다. 이를 파헤치기 위해 법부터 우선 살핍시다. 우영우 변호사 덕에 법은 재미있으니까요. 

 

1972년에 문화예술진흥법이라는 법률이 제정되었고, 그때 법이 말하는 ‘문화예술’의 범주가 정해졌습니다. “이 법에서 “문화예술”이라 함은 문학ㆍ미술ㆍ음악ㆍ연예 및 출판에 관한 사항을 말한다.”[제2조(정의)] 딱 다섯 분야가 들어 있고, 만화는 없습니다. 만화는 언제 들어갔을까요? 2013년 7월 16일입니다. “"문화예술"이란 문학, 미술(응용미술을 포함한다),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演藝), 국악, 사진, 건축, 어문(語文), 출판 및 만화를 말한다.”[제2조(정의) 제1항] 그동안 법이 개정되며 무용, 연극, 영화, 국악, 사진, 건축, 어문 등이 차례차례 추가되었고, 마침내 만화가 포함되기까지 4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자 그러면 퀴즈를 한번 풀어봅시다.

 

우리나라에는 ‘국립’ 대한민국예술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예술창작에 현저한 공적이 있는 예술가를 우대·지원하고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을 행함으로써 예술발전에 이바지하게 한다.”는 목적 아래 설립된 곳입니다. 대한민국예술원법이라는 법도 따로 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예술 경력이 30년 이상이며 예술 발전에 공적이 현저한 사람”은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될 수 있는데요, 유고회원을 제외하고 현재 85명의 원로 예술인이 예술원 회원으로 계십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분으로는 영화 분과의 임권택 감독, 문학 분과의 신경림 시인 등이 있습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고 이어령 선생도 문학 분과 회원이셨죠.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대한민국예술원의 만화 분과 회원은 몇 명일까요?

 

 

(이미지=대한민국예술원 홈페이지 갈무리)

 

답은, 대한민국예술원에 만화 분과는 없다, 입니다. 만화가인 회원도 한 분도 안 계십니다. 돌아가신 분 중에도 없어요. 아니, 불과 10년 전이긴 하지만 법률로 만화가 예술임이 인정되었다면, 예술원 회원이 한두 분 정도는 계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뭔가 이상합니다. 하지만 만화가 법률상 예술이라는 점에만 초점을 맞추면 이 이상함을 풀 수 없습니다. 핵심을 봐야 돼요.

 

그렇다면 핵심은 무얼까요? 그걸 알아보기 위해 우선 보던 걸 보도록 합시다. 대한민국예술원은 왜 만화 분과가 없고 만화가 회원도 없을까요? 이걸 대한민국예술원이 만화를 예술로 보지 않는 증거라고 판단해야 할까요? 대한민국예술원에 만화가 회원이 생기면 그건 만화가 예술이라는 의미일까요?

 

 


예술원에 만화 분과가 없는 이유는

우선 대한민국예술원의 신규 회원이 어떻게 추천되는지부터 알아봅시다. 1954년에 ‘문화보호법’을 근거로 개원하고 1989년에 ‘대한민국예술원법’이 제정되며 현재의 대한민국 예술원이 이어지는 동안 조금씩 변화는 있었습니다만, 신규 회원은 해당 분과 회원들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현행 대한민국예술원법 제5조는 “회원은 회원이나 예술원이 지정하는 해당 분야의 예술단체가 추천한 사람 중에서 회원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총회의 의결로 선출된다.”고 정하고 있어요. 이를 기반으로 보면, 만화가 회원이 신규 회원으로 선출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만화가가 아닌 기존 회원이 만화가를 추천할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추천하려고 해도 분야가 없으니 애매하기도 합니다. 문학으로 하기도 미술로 하기도 애매하죠. 이건 ‘예술원이 지정하는 해당 분야의 예술단체’의 추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분야 분과 자체가 없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예술 단체’의 추천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만화 분과 추가는 가능할까요? 그간 역사를 보면 예술원의 분과가 추가된 적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창기 문학, 미술, 음악, 연예 분과로 구성되었던 예술원은 이후 연예 분과를 통합된 명칭 없이 세 개의 소분과로 나눕니다. 소분과는 연극, 영화, 무용인데요, 초대회원 시절부터 이 소분과에 해당하는 예술인들은 계속 회원으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7개 분과입니다만, 회원 정원으로 보면 문학이 28명, 미술이 25명, 음악이 22명, 그리고 연극·영화·무용이 25명으로 크게 4개의 분과에 총 정원 100명이 나뉘어 배정되는 방식입니다. 이 정원 배정 방식이 예술원에 새 분과가 생기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총 정원을 늘리거나, 아니면 각 분과에 배정된 정원을 조금씩 양보해야 새 분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원을 늘리려면 그만큼 예산이 늘어나야하는 일이기에 어렵고 기존에 배정된 정원을 양보하는 일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술원 홈페이지에 소개된 예술원의 분과 구성

 

여기까지 정리해 보면, 대한민국예술원이 딱히 만화를 예술로 보지 않으려는 강고한 의지를 지녔다고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영화보다 더 오래된 사진이나 번역 같은 분야가 없는 걸 보면, 만화가 아니라 다른 무엇도 자신들이 쳐둔 예술의 울타리를 넘어서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살짝 들긴 합니다만 설마 그렇진 않겠죠. 아마 회원 대부분이 자기 분야가 아닌 예술에 관심이 썩 없고, 새로운 예술 장르를 발견했다손 치더라도 새 분과를 만들어 그것을 인정할 의지가 없는 정도일 겁니다. 이런 회원들의 마음의 관행을 그만큼 경직된 규정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정원, 분과 구성 등의 규정이 댐이 되어 고인물이 더 고이게 만들고 있다고 할까요.

 

 


'만화 왕국' 일본은 어떨까?

여기서 잠시 시선을 밖으로 돌려 일본 사례를 참고해 봅시다. 일본은 ‘만화 왕국’입니다. 만화의 위상을 따지자면 세계 최고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예술로서 만화의 위상은 조금 다른 문제이긴 합니다만. 좌우지간 일본에도 대한민국예술원과 거의 똑같은 기관이 있습니다. 이름도 일본예술원입니다. 일본예술원은 1919년 설립된 「제국미술원」을 기원으로 하여 1937년에 문예, 음악, 연극, 무용 분과로 구성된 「제국예술원」으로 현재에 가까운 구성을 갖추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1947년에 「일본예술원」이라는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되었고요. 여러모로 대한민국예술원이 설립에 참고한 모델이라 보아도 무방해 보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본예술원 역시 ‘만화’ 분과가 없었고 만화가 회원도 없었습니다. 그 유명한 만화신 데즈카 오사무마저 일본예술원 회원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러던 것이 바로 올해, 2022년부터 달라졌습니다.

 

 

(이미지=일본예술원 홈페이지 갈무리)

 

일본예술원의 기본 구성은 미술, 문예, 음악·연극·무용의 3개 대분류를 바탕으로 합니다. 각각 제1부, 제2부, 제3부로 지칭되는데요, 각 부마다 하위 분과가 나뉘어 2021년까지는 총 16개 분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2022년 총 18개 분과 구성으로 바뀌며 만화(マンガ) 분과가 추가되었습니다. 이 변화를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꽤 큰 변화가 있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각 분과 및 부별 정원도 폐지했다고 하네요.

 

 

 

 

이런 대대적인 변화와 함께 2명의 만화가가 일본예술원 회원 자격을 얻게 됩니다. 바로 <나사식>의 츠게 요시하루와 <내일의 죠>의 치바 데츠야입니다. 치바 데츠야 선생은 “이번에 만화가 일본의 예술, 문화의 하나로서 인정받게 된 것 같습니다.”라는 소감을 통해 그간 만화를 인정하지 않았던 일본예술원을 돌려까는 듯합니다. 그리고 일본예술원이 회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만화 선배들을 하나하나 거론합니다. 그 끝에는 물론 데즈카 오사무가 있었지요. “그런 위대한 선배들의 궤적을 잊지 않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영예를 감사히 받고자 합니다.”라는 치바 데츠야의 소감1)은, 그간 이분들을 일본예술원 회원으로 대우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항의로까지 들립니다.

 

 


'무엇이 예술인가'에 대한 인정

하지만 이렇게 고깝게 보지 않고, 이 글이 처음 물었던 질문 “만화는 예술입니까?”로 돌아가 봅시다. “이번에 만화가 일본의 예술, 문화의 하나로서 인정받게 된 것 같습니다.”라는 치바 데츠야 선생의 발언은 일본예술원의 인정을 보다 확장해 받아들이는 듯 보입니다. 달리 말해, 만화가 일본예술원을 넘어 일본 사회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감상으로 이해됩니다. 이제 “만화는 예술입니까?”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는 일이 조금 더 그럴싸한 일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 단순한 얘기지만 약간만 구체적으로 논해 보겠습니다.

 

‘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란 무척 복합적으로 구성됩니다. 이것은 나라마다 문화권마다 또 세대나 계급 등 여러 다른 요소에 따라 달라집니다만, 이 모든 것이 상당히 긴밀하게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미국에서 <기생충>에 상을 주며 인정한 것이 한국 사람들에게 국뽕 한사발을 들이키게 하고 <기생충>을 넘어 한국 영화에 대한 자긍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거꾸로 한국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을 보고 타국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역시 한국 드라마는 재미있어’라는 전반적 평가가 공유되기도 하죠. 크게는 세계적으로 구성되는 이러한 영향 관계까지 염두에 둔 채로, 국내로 국한하여 예술의 ‘사회적 인정’을 구성하는 장 중에서도 ‘제도’를 간단하게 살펴봅시다.

 

법률과 제도. 법도 제도의 일부지만 나누어서 법이 이론이라면 제도는 실천입니다. 법은 만화를 예술이라 하지만 제도적 기관인 대한민국예술원은 아직 만화를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은 차이를 우리는 포착했습니다. 예술이라는 법적 인정과 그 제도적 인정은 다를 수 있는 거죠. 예술 교과 과목도 생각해 봅시다.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우리는 문학, 음악, 미술 정도만을 기본 예술 교과목으로 다루어 왔습니다. 다른 예술 분야는 심화 과정이나 예중·예고 혹은 예술계 특성화고등학교에서나 교과목으로 다룹니다. 이렇게 예술 간 익숙함의 차이, 혹은 예술 간의 위계를 우리는 ‘자연스럽게’≒‘제도적으로’ 체득합니다. 엄밀히 말해 제도는 아니지만 제도와 연결된 다른 실천들도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자습 시간에 시집을 보는 학생과 만화책을 보는 학생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 같은 것이죠. 차라리 둘 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라면 공평하기야 하겠습니다만, 아마 꽤나 다를 겁니다.

 

이처럼 제도적 차원에서 구성되는 예술 장르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차등이 발견됩니다. 이게 바로 핵심입니다. 만화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가 여러 형태로 존재하는데, 대체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이래서야 “만화는 예술입니까?”라는 물음에 “만화는 예술이 맞는데 예술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보니 예술로 잘 보이지 않는 게 실정”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제 예술원 문제로 돌아가 결론을 지어봅시다. 대한민국예술원은 분명 만화를 제도적으로 차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그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일본예술원의 사례에서 보듯, 차별하지 않기 위한 변화가 가능합니다. 그 변화가 잘 일어날 때 한국에서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정도 강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예술원과 관련해서는 작년 이맘때 다른 측면에서의 문제도 제기된 바 있었죠.2) 모두 적절한 문제 제기라 생각하지만 굳이 말을 보태지 않겠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할 얘긴 다 했으니까요.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예술원의 응답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2024년이면 대한민국예술원은 창설 70주년을 맞습니다. 적어도 그 전에는 혁신안을 내놓길 바랍니다. 만화 분과 신설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어떤 원로 만화가 선생님이 예술원 회원이 되시면 좋을까를 만화계와 독자들이 즐겁게 고민할 일이 곧 오길 바랍니다. 작은 변화일지라도, “만화는 예술입니까?”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건 환영할 일입니다.

 

 

 

사족 : 일본예술원에서 만화가 소설·희곡, 시가, 평론·번역과 함께 ‘문예’의 하위 분과가 된 일, 흥미롭지 않나요? ‘미술’의 하위 분과가 되는 일도 전혀 말이 안 되진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풍성한 이야기가 도사린 사건인 것 같습니다. “만화는 예술입니까?”에서 “만화는 어떤 예술입니까?”로 넘어가는 거죠. 가장 좋은 건 아예 제4부 만화가 독립적으로 생기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대한민국예술원이 언젠가 만화 분과를 추가하려 한다면, 그맘때 이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일단은 기다려 보겠습니다.​ 

 

 

 

1) 黒田健朗, 「치바 데츠야 씨 「만화가 예술, 문화의 하나로」 예술원 신회원으로」,『아사히신문』, 2022년 2월 22일. https://www.asahi.com/articles/ASQ2Q5RPXQ2QUCVL01L.html?fbclid=IwAR1mDeLHw02n0GmafJFDXGqBtgON6CmT5nZh1Y0yJWdeWqKi5op55dk9iLY ​

2) 대표적으로 문화연대의 논평을 참고 바람. 「대한민국예술원의 전면 혁신을 요구한다」, 2021년 8월 25일. https://culturalaction.org/48/?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6Mjt9&bmode=view&idx=7632693&t=board&category=5O1n411Rd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