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웹툰에 영향이 없을 거라구요? 글쎄요.

한국일보 온라인판의 11월 1일자 "도서정가제 때문에 무료 웹툰 못본다고?"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도서정가제가 웹툰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웹툰 및 웹소설의 정가표시 협조문’을 언급하며 “도서정가제는 무료 웹툰을 막는 제도가 아니며, 정가를 알 수 있도록 원화로 표시하라는 내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해당 칼럼에서는 웹툰의 ISBN 발급을 언급하며 “웹툰이 ISBN을 받는 이유는 출판물이 되는 과정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웹툰이 출판물이라고요? 웹툰의 법적 지위

 

여기서 한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ISBN이 ‘출판물이 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웹툰을 출판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궁금증입니다. 책으로 발행되는, 그러니까 ‘단행본’으로 판매되는 웹툰은 전체 웹툰의 10% 미만으로 추산되며, 정확한 수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해에 연재되는 웹툰을 보수적으로 잡아 3,000종으로 잡아도 10%면 300종 이상이 단행본으로 나와야 하는데, 대형 서점의 ‘웹툰’코너는 책장 하나 정도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웹툰의 주요 유통 경로는 출판되어 책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웹을 통한 유통인 셈이죠.

 

때문에 웹툰계에서는 계속해서 웹툰의, 나아가 웹 콘텐츠의 독자적인 식별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왔습니다. 온라인에서 주로 유통되는 콘텐츠인 웹툰은 단행본을 목적으로 하는 콘텐츠가 아닙니다. 일본의 만화시장처럼 단행본 판매가 성공의 척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판매량, 그러니까 독자가 얼마나 구매했는지가 성공의 척도인 시장입니다. 때문에 출판을 목적으로 하는 ISBN을 10여년 전, 웹툰의 태동기에 편의상 등록했다면 이제는 별도의 식별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출판법(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서는 출판을 “저작물 등을 종이나 전자적 매체에 실어 편집ㆍ복제하여 간행물(전자적 매체를 이용하여 발행하는 경우에는 전자출판물만 해당한다)을 발행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화진흥법에서는 만화를 “하나 또는 둘 이상의 구획된 공간에 실물 또는 상상의 세계를 가공하여 그림 또는 그림 및 문자를 통하여 표현한 저작물로서 종이 등 유형물에 그려지거나 디스크 등 디지털매체에 담긴 것을 말한다.”고 정의합니다. 

 

 


아직까지 '웹툰'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위 법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같은 법에서 출판만화는 “출판물의 형태로 발간되는 만화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디지털만화는 별도로 “만화를 디지털파일 형태로 가공·처리하고 이를 디스크 등의 디지털매체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항제1호에 따른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이용자에게 제공되는 만화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만화 창작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유통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주관하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때문에 웹툰은 법적인 지위가 애매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죠. 출판물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웹에서의 유통을 주로 염두에 둔 콘텐츠의 규정이 2018년 8월, '콘텐츠산업 진흥법'이 시행되면서 마련되었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웹툰과 관련한 법령은 먼저 시행되고 있는 법령들이 있어 법적 지위가 더욱 애매해진 상황입니다.

 

이런 복잡한 법적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실제로 '물리적 실체'가 있는 단행본을 소유하는 전통적 ‘출판’과 플랫폼이 사라지면 다시 볼 수 없는 웹 콘텐츠가 본질적으로 같은가’는 오래된 논쟁거리입니다. 실제로 이자혜 작가의 <미지의 세계>는 작가 관련 논란이 일자마자 레진코믹스에서 완전히 삭제해 최근까지 단행본이 아니면 볼 수 없게 되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콘텐츠를 출판물로 보고 똑같은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웹툰에 별도의 식별체계가 있다면, 웹툰이 단행본으로 발행될 때에만 해당 단행본에 ISBN을 발급하면 됩니다. 현재 출판문화진흥원의 주장대로 웹툰과 웹소설에 ISBN을 발급하는 것보다 합리적입니다. 해당 칼럼에서 네이버 쿠키를 예시로 들며 ‘쿠키 2개는 원화로 120원쯤에 판매되고 있다’고 적었지만, 쿠키 개수로 나누면 모든 금액대의 쿠키 구매가 모두 쿠키 한 개당 120원으로 떨어집니다. 네이버와 카카오페이지처럼 이미 정해진 금액대로 코인, 또는 쿠키를 판매하고 있는 업체의 입장에선 소비자에게 ‘쿠키 1개’대신 ‘120원’으로 표기를 바꾸라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웹툰업계에선 독자체계를 만들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그동안의 행정공백을 막기 위해 유예기간을 요구했지만 6개월간 제대로 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도서정가제가 도입되어도 웹툰 시장엔 변화가 없다?

 

또한, 해당 칼럼에선 ‘도서정가제가 도입되어도 웹툰 시장엔 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웹툰 회차별 ISBN 부여’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의 해법을 “웹툰을 회차별이 아닌 종당으로 구분해서 ISBN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내놓기도 했는데, ISBN 문제가 웹툰계에서 불거졌던 이유가 이미 현행대로 종당으로 구분해 ISBN을 부여하고 있던 것을 출협에서 ‘유통 단위별로 부여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시에 ISBN이 등록되면 출판법상 도서로 분류되어 도서정가제 도입이 강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출판문화진흥원에서 최초에 요구했던 사항도 ‘ISBN을 등록해 도서로 분류되고 있으니 도서정가제를 도입해 정가표시를 하라’는 요구였지요. 결국 정가표시 요구는 ‘도서정가제 편입’ 요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말인 셈입니다. 도서정가제에 편입되면 지난 반년간 이야기했던 대로 정가의 10% 할인, 5% 포인트 지급 제한이 생깁니다. 이 말은 결국 현재 웹툰을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는 할인 이벤트, 기다리면 무료 등 다양한 프로모션이 불가능해질수도 있다는 말로 해석됩니다.

 

최근 카카오페이지는 프로모션을 통해 추석 연휴 마지막날에 ‘일 10억원’ 거래액을 달성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일 10억원 거래액이 도서 판매였을까요? 아닙니다.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웹 콘텐츠 매출액이었죠. 당일 최고 매출액 작품은 1억원이 넘는 구매액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프로모션은 ‘오리지널 정주행 위크’로, 카카오페이지 오리지널 웹툰을 3편 이상 감상한 독자들에게 VOD 감상권, 치킨 기프티콘, 캐쉬백 이벤트를 포함해 1편만 감상해도 카카오페이지 캐시를 지급하고, ‘기다리면 무료’ 감상시간을 24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이는 등의 프로모션이었습니다. 현행 도서정가제가 웹툰에 도입되면 정가의 10% 이내에서만 이벤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이벤트입니다. 웹툰 한편의 정가는 대략 200원에서 500원 사이가 보통입니다.

 

해당 칼럼에서는 '무료로 온라인에 연재하는 웹툰'의 경우에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출판문화산업진흥원 관계자의 말을 빌려 "무료 웹툰에 대한 기준은 아직 검토된 게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연재중인 웹툰이면 출판물이 되기 전에, 그러니까 ISBN을 부여받기 전에는 웹툰 플랫폼의 결정에 달렸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현재 대다수의 유료 웹툰 플랫폼(포털 제외)에서 시행하고 있는 슬라이딩 방식의 코인 구매 역시 도서정가제가 도입되면 변경이 예상됩니다. 최대 15%의 할인율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큰 금액을 결제하면 더 많은 할인율을 적용하는 현행 방식은 변경이 불가피합니다. 웹툰시장에서 양강체제가 공고해지고, 다른 플랫폼들이 비교할 수 없는 자금력을 갖춘 플랫폼과 동등한 경쟁이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도서정가제 청원이 2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현행 도서정가제 일몰기일인 내년을 앞두고, 출판계에서는 지금보다 강화된 도서정가제 도입을 요구하며 도입 강행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도서정가제의 득과 실은 확실합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온라인 서점으로 시장이 이동하면서 당일배송, 무료배송을 등에 업은 온라인 서점은 매출이 올랐지만, 오프라인 서점, 특히 동네 서점은 계속해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도서정가제가 완전히 폐지되면 저자들의 선인세는 물론 창작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때문에 보다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현재의 소통 방식은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것이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웹툰과 웹소설을 도서정가제에 포함시키려는 시도 역시 계속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온라인 유통을 목적으로 하는 콘텐츠의 지위가 명확하지 않아 진통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웹툰의 법적 지위를 확정하고, 웹툰을 포함한 웹 콘텐츠의 별도 식별체계 도입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관계기관, 그리고 작가와 플랫폼 등 이해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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