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굿바이, 스탠 리(Stan Lee, 1922-2018)

굿바이, 스탠 리

Stan Lee, 1922-2018

 

 

2010년대 지구의 대중문화를 관통하는 키워드중 하나는 ‘마블’이다. 역대 시리즈물 흥행순위에서 <해리 포터>, <제임스 본드(007)>, <스타워즈>등 걸출한 시리즈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차이로 1위(“List of high-grossing films”, Box Office Mojo, IMDb)를 기록하고 있는 시리즈는 다름아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다. 2위인 해리포터 시리즈보다 약 13억 5천만 달러를 앞선 90억 8천만 달러를 기록 중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만든 사람이 있다. 마블 시리즈의 실질적 1인자이자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원 어보브 올(One Above All)”로 추정되는 인물, 스탠 리라는 사람이다.

 

[ 원본 이미지 출처 - WIKIPEDIA ]

 

1922년 맨해튼의 웨스트엔드에서 태어난 그는, 영화와 독서, 그리고 글쓰기와 연극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1939년부터 삼촌이 운영하던 타임리 코믹스(마블 코믹스의 전신)에서 편집 조수로 일하면서 <캡틴 아메리카>의 전쟁 전, 후의 각본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60년대부터 그의 전성시대가 열린다. 스파이더맨, 판타스틱 포, 엑스맨, 아이언맨, 헐크, 토르, 데어데블, 닥터 스트레인지 등의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다. 건망증 때문에 캐릭터들의 이름 머릿글자를 맞춘 것이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헐크는 브루스 배너(Bruce Banner), 데어데블은 맷 머독(Matt Murdock), 닥터 스트레인지는 스티븐 스트레인지(Stephen Strange), 스파이더맨은 피터 파커(Peter Parker)같은 캐릭터들의 이름은 앞뒤 머리글자가 똑같다.

 

이런 무지막지한 캐릭터들을 창조(단독, 공동 포함)한 “스탠 리” 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닌 필명이다. 본명은 스탠리 마틴 리버(Stanley Martin Lieber). 그가 한창 활동할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만화가 받는 취급은 우리나라에서 만화나 게임이 받는 취급과 비슷했다. 때문에 본명은 소설가로 데뷔할 때 쓰려고 필명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 도대체 어느정도로 인식이 안 좋았길래 스탠리가 필명으로 자신의 정체를 감추려고 했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예가 있다. 1954년 미국 만화잡지협회(CMAA)는 만화에 대한 학부모 등의 반대여론이 등장하자 “CCA(Comics Code Authority)”를 만든다. CMAA가 만화가 발매되기 전 작품들을 확인하고 CCA에 적합하면 도장을 찍어주는 식으로 본격적으로 만화에 대한 검열이 시작됐다. 이 검열은 제목에 쓰는 단어들을 제한했고(Terror, Horror, Weird 같은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함), 폭력등을 금지했다. 우리나라의 과거 검열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이런 조치들로 650종에 달하던 만화잡지가 250여개로 줄었고, EC코믹스 등의 걸출한 회사들마저 문을 닫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스탠 리는 만화 제작을 그만둘 생각을 했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피와 총알 대신 바위와 불꽃을 날리는 <판타스틱 포>의 대성공으로 만화계에서 계속 창작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이렇게 CCA 때문에 고통받던 스탠 리는 정작 CCA의 힘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1962년 스파이더맨이 발표되고 인기를 얻자 당시 미국 교육보건복지부에서 스탠 리에게 ‘청소년에게 약물복용의 위험성을 알리는 메시지를 담아달라’는 서한을 보낸다. 스탠리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스파이더맨 이슈 #96-98의 스토리를 쓰는데, CCA는 이 이슈의 발행을 거절한다. 스탠 리는 로이 토머스와 함께 펴낸 2006년 저서 “Amazing Marvel Universe”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이 스파이더맨 이야기를 펴내기 위해서는 CCA 승인이 필요했죠. 근데 협회에서는 ‘이 스토리 못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냐고 물었더니 ‘CCA에 따르면 약물 얘기가 나오면 안되니까요.’라고 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약을 하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약물복용이 나쁘다는 얘긴데요’ 라고 했더니 ‘상관없어요. 약물이 들어가면 안돼요.’라고 하지 뭐예요. 그래서 ‘보건복지부에서 해달라고 했는데요?’라고 했는데도 ‘상관없습니다. 약물이 나오면 안돼요.’ 라고 하더라고요

 

스탠리는 미 연방정부의 요청이 CCA보다 우선한다고 판단해 CCA 승인 마크 없이 책을 내기로 결정한다. 이 이후, CCA는 점차 힘을 잃게 된다. 스탠은 미국 만화시장 전체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점점 더 많은 작품을 담당하게 되어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분업화를 이뤄냈고, 이건 미국 만화시장의 현재까지 이어지는 대표적인 생산 시스템이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부터 애니메이션, TV 시리즈 등 다양한 분야로 만화 원작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MCU가 시작되며 본격적으로 영화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스탠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헐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창작자 스탠 리는 “자신이 하는 일은 일용직”이라며 창작자들의 작품이 회사에 귀속되는 경우가 일반적인 미국 만화시장을 비판하기도 했다. 스파이더맨의 창작자임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 트릴로지가 시작되던 2000년대 초 수익배분을 받지 못해 마블에게 1000만달러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제도의 실질적인 개선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탠 리는 역사에 한줄을 남긴 창작자인 동시에, 동시대 만화인들의 권익을 위한 발언을 할 줄 아는 선배이기도 했던 셈이다.

 

그러나 말년의 스탠은 그리 유쾌한 기록을 남기진 못했다. 집에서 투병중이던 2018년 초, 간호인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결과를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재판이 끝나기 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굳이 그를 위한 변명을 남기고 싶지는 않다. 개인 ‘스탠리 리버’와 창작자 ‘스탠 리’에 대한 평가는 분명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변함없는 건, 자신이 원작인 영화 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들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스탠 리의 마지막 출연작은 아마도 내년 개봉이 예정된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이 될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스탠의 죽음은 내겐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매일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내가 애정을 쏟는 것들을 만들어낸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상실감을 줬다. 젊은 세대가 태어날 때부터 그곳에 있었던 사람인 스탠 리는 아버지뻘인 캐릭터들이 지금도 살아 숨쉬게 해 준 사람이다. 위대한 창작자, 원 어보브 올, 그를 지구-1218이 아닌 다른 지구에서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굿바이, 스탠 리.​ 

 

 

작성자: 웹툰평론가 이재민

작성일: 2018년 11월 13일

등록일: 2018년 11월 13일

수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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