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때다' 싶은 당신들에게

'이때다' 싶은 당신들에게

 

2018년 2월이 되자마자 충격적인 소식들이 쏟아졌다. 1월 30일, 공정한 웹툰 생태계 조성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중이던 시각에 레진코믹스는 작가들에게 ‘허위사실’을 이유로 법적 대응을 준비하겠다고 무려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런 행동에 이젠 남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 분노가 치밀었다.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모습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위근우 작가를 시작으로 레진코믹스에 연재하는 많은 작가들이 트위터 상에서 #나도_고소하라 해쉬태그 운동을 벌였다. 피해 작가와 연대하며 동맹 휴재를 하는 작가들은 물론 많은 작가와 독자들이 나서서 “나도 고소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무엇이 허위사실인지 물었으나 답은 없었다. 피해 작가들은 일본어와 영어로 자신들이 받은 피해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진코믹스는 미국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해명을 내놓았다. 한 줄로 요약하면 “모두 사실이 아니다” 또는 “사실과 다르다” 정도로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잘못에 사과하라는 요구를 듣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행인 점은, 토론회로부터 이틀이 지난 2월 1일 저녁, 만화가협회는 피해작가들의 소송비용 모금 공지를 올렸고, 2시간만에 2천여만원이 모였다는 점이다. 비용 일체는 소송 대응에 우선 쓰고, 남은 돈은 다른 불공정계약 등 피해작가의 지원금으로 쓰인다고 한다. 2시간여만에 벌어진 일에 모두들 놀라워했다. 모두 오랜만에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한편, 같은 시각 한 만화 기획제작 및 번역을 한다는 업체가 암호화 화폐를 통해 작가 후원을 하고자 한다는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필자는 만화가협회에서 모금을 하고 있는데 작가분들과 협의가 된 것인지 물었고, “수익은 100% 작가에게 돌아간다. 암호화 화폐 방식으로 투명하게 관리된다”는 답변을 했다. 그리고 작가들이 문제제기를 하자 조용히 글을 지운 것으로 알려졌으나, 홈페이지와 안내 슬라이드 등에는 아직도 은송 작가의 양극의 소년이 걸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2018. 2. 13. 00:54 확인).

 

[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슬라이드에서 '양극의 소년'를 확인 할 수 있다 ]

 

 

좋은 의도가 있는지와는 별개로, 나는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 사태를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입장에서, 한 발이라도 걸치고 계속해서 사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해온 사람들의 그림자들을 훔쳐볼 수 있었다. 그곳에선 볼 수 없던 그림자들이 선의로 포장한 자기PR을 하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애초에 작가들과 협의 없이 지원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너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오만이다. 같은 시각 만화가협회에서 진행한 모금은 한 작가의 제안에서 시작해 이사회에 회부되었고, 작가와 협의를 거쳐 시행하고 계좌를 닫는 것까지 피해 작가들과 협의했다. 사용처와 그 내역에 대해서도 공개하기로 했고, 잉여분의 사용처까지도 작가와 협의했다. 하지만, 이 ‘암호화 화폐 모금’은 “작가에게 돌아간다”고만 해 놓았을 뿐이다. 게다가 어떻게 지급할 예정인지, 해당 작가의 ‘지갑’은 어떻게 관리되는지, 심지어 작가와 협의했는지 문의해도 도돌이표처럼 ‘작가에게 돌아갈 예정’ 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해당 업체는 자신들이 준비중인 암호화 화폐를 통해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작가 뿐 아니라 팬이 등록할수도 있다고 되어있는데, 저작권자가 아닌 사람이 등록했을 경우 생길 분쟁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암호화 화폐는 신뢰성과 복제불가능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작부터 협의되지도 않은 지원을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신뢰부터 깎아먹었다. 신뢰는 비싸고, 한번 깎인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하물며 애초에 신뢰가 없었던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른 매체의 경우도 자유롭지 않다. 탑툰을 운영중인 탑코믹스는 레진코믹스에서 BL을 연재하던 작가들을 대거 영입했다. 하지만, 탑툰은 (물론 거의 모든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2016년 여름에서 자유롭지 않은 플랫폼이다. 소신발언을 한 작가를 에이전시를 압박해 해고했고, 에이전시는 해당 작가에게 악플 폭탄을 받도록 했다. 이런 부당한 행위를 놓고 “오직! 독자만을 위한”이라는 문구를 써가며 홍보했던 전력이 있었기에 작가와 독자들의 분노 섞인 항의를 받았고, 문제인식 정도에 그친 해명을 내놓았다. 항의를 받고 사흘만에 내놓은 것처럼 보이는 해명문 뒤에는 1년 5개월이 숨겨져 있다.

 

[ 탑툰 해명글 ]

 

 

언제라고 만화계에 바람 잘 날 있었겠냐만, 어느때보다 다양한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누군가는 지금을 기회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게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합리적이고 적절한 계획하에서 전략을 세운다면 분명히 본인들 뿐 아니라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여러 방향에서 바람이 불 때 자신이 유리한 바람에만 올라 타려다 보면, 반드시 맞바람을 맞게 된다. 흐름을 읽는 일은 어렵다. 상대를 얕잡아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나도 고소하라”는 외침을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만 쫓는 것은 곱게 보기 어렵다. 무언가에 맹목적인 사람들은 때론 매력적이지만, 해를 끼치기 시작하면 그만큼 꼴불견도 드물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곧 명절이 다가온다. 다음웹툰에서는 38작품의 명절휴가를 공지했다. 웹툰업계의 지옥과 같은 노동강도는 이젠 유명하다. 개별 작가와의 협의, 선택지 제공과 더불어 휴재시에도 일정부분의 휴가비가 지급된다면, 명절 휴무는 작가 복지에 대한 최소한의 대안이자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정말로 작가 복지를 생각한다면, 작가와의 복지 방향에 대한 논의가 먼저여야 한다. 당사자들을 빼놓은 ‘갑’들의 생색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이제, 그만 볼 때도 되지 않았나. 이때다 싶어 달려드는 당신들 말이다.​ 

 

작성자: 웹툰평론가 이재민 

작성일: 2018년 2월 13일

등록일: 2018년 2월 14일

수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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