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투니스타 푸른봄 이재민 기고문) [주장] 레진코믹스 웹툰작가 지각비 폐지결정에 부쳐

웹툰 전문 팟캐스트 '웹투니스타'의 푸른봄 이재민님은 <[주장] 레진코믹스 웹툰작가 지각비 폐지결정에 부쳐>의 기고문 칼럼을 보내주셨습니다. 

 

---- 기고문 ----

 

 

 

11월 9일, 레진코믹스(이하 레진)는 소속 작가들을 대상으로 사측이 임의로 정한 마감시한 (보통 연재 2일 전 오후)을 어긴 작가들에게 걷던 지체상금, 소위 ‘지각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지각비가 이슈가 된지 거의 한달여 만이다. 피해당사자인 작가들은 물론 웹툰작가협회에서도 목소리를 낸 다음에야, 레진은 9일 저녁 공지를 통해 2018년 2월부터 순차적으로 지각비를 없애겠다고 했다.

 

지각비가 없어진 사실은 분명 환영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여기엔 많은 설명이 빠져있다. 먼저 지체상금은 계약기간 내에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때 지불하는 금액이다. 지체보상금이라고도 불리는 지체상금은 보통 아파트 입주, 공사등이 늦어졌을 때 지불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지체상금은 ‘지각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레진이 지체상금으로 인한 수익을 노리고 과도한 지체상금을 매겼다거나, 아니면 마감 이틀전 오후를 마감 기한으로 했다는 식의 주장을 펴지는 않겠다. 다만, 지각으로 인해 많은 작가의 연재가 힘들어질 정도라면, 플랫폼으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고민은 ‘지각비를 받아 지각을 막자’가 아니라, ‘연재 시스템에 문제는 없는가?’ 여야 했다. 말한대로 지각비는 지각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지각이 많아지면 실패한 시스템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지각비 이슈에서 한 작가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연재를 계속하다보니 지각비가 천만원이 넘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가 되면, 연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걸 알아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처음 레진이 출발할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던 <나쁜 상사>는 주간 연재가 아니라 10일주기 연재를 해서 주목을 받았다. 레진이 다크호스로 떠오르던 2013년에도 이미 ‘주간연재는 지옥’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착안한 것이 10일 마감이었고, 작가들은 10일 마감 안에서 최고의 퀄리티를 뽑아내기 위해 10일을 다 사용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10일주기는 유료 웹툰을 연재하는 작가들에겐 비효율적이었고, 레진에게도 좋은 모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주간연재를 유지하되 분량을 줄이는 방법 또한, 유료 플랫폼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지였을 것이다.

10일 연재가 충분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대부분 플랫폼에서 주간연재가 정착화된 상황에서 10일 주기 연재는 콘텐츠의 최신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레진은 전면에 내세웠던 10일 연재보다 주간연재에 더 열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 합리적인 판단이다.

여기서 분기점이 생긴다. 물론 추측의 영역이지만, 사업자의 사고를 한번 따라가 보자. 리스크를 회사가 지면서 관리비용을 발생시키되 작품의 퀄리티를 올려 유료수익을 끌어올릴 것이냐, 아니면 현행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리스크를 생산자, 즉 작가에게 떠넘길 것이냐. 후자는 사업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너무나 달콤한 제안이다. 품은 거의 들지 않지만 거기에 ‘정의로워 보이는’ 사업외수익까지 발생하니까.

그리고 레진은 후자를 선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사업자로서는 너무나 합리적인 결정이다. 때문일까, 2년이 넘게 지나 마침내 지각비 이슈가 터지고서야, 레진은 점차적으로 지각비를 없애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레진은 지각비의 실행 이유를 1) 마감을 지키지 않고 늦어지는 작가들이 늘어났다. 2) 마감이 지켜지지 않으면 더 많은 직원이 투입된다라고 말하며 ‘회사 입장에선 마감을 제때 지켜서 지체상금 조항을 실행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작가들이 요구해 얻어낸 결과물인 월 1회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면제를 마치 레진이 시혜적으로 베푸는 것 처럼 말하기도 했다. 동시에 레진측의 오류가 있을 경우 상호 만족할 만한 합리적인 운영상 보상을 지급하고 있다고도 했는데, 이 보상을 받았다는 작가들의 증언은 듣기 힘들었다. 

이런 레진의 입장을 들어보면 또다시 리스크를 작가에게 떠넘긴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레진은 지체상금 조항을 2월 1일에 폐지하는 이유를 크게 1) 작가들과 별도 서면합의가 필요하다 2) 시스템을 바꾸고 마감시간을 변경/원고수정시간을 정확히 정하는 등 제도 보강을 이유로 들었다. 지체상금의 실행을 보류하고 시스템이 정비되면 계약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2월 1일까지는 현행대로 유지하다가 바꾼다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다. 

 

지각비 이슈가 불거지기 직전, 레진은 갑자기, 그리고 일방적으로 웹소설 서비스 중단을 공고했다. 몇몇 작가들은 웹소설과는 관계 없는 필자보다 늦게 소식을 접했다. 작가와 합의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하는데는 3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시스템을 없애버리는데는 공모전 당선작들이 데뷔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며칠이면 충분하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웹소설 종료야 말로 완결, 연재, 연재예정(공모전 당선자 포함) 작가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 작가 개개인이 받아야 할 보상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를 하고 문을 닫아버리지 않았던가.

반면, 지각비 이슈는 작가들의 분명한 요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 정비를 이유로 3개월간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시스템을 3개월간이나 유예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런 상반된 태도는 오히려 작가와 플랫폼의 신뢰를 잃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신뢰의 비용은 매우 비싸다.

뿐만 아니다. 독자들 사이에서도 불신이 싹텄다. 일부 독자들은 ‘납품이 늦었으면 보상을 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폈다. 플랫폼과 작가는 일종의 본청-하청 관계이니 작가들이 납품기일을 못맞추면 지체상금을 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하청은 ‘수급인이 맡은 일의 전부나 일부를 다시 제삼자가 하수급인으로 맡는 일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을 말한다. 그러니까, 플랫폼이 맡은 일이 작품의 제작이고, 그 원작을 가지고 있다면 논리가 성립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작가와 플랫폼의 관계는 다르다. 작품은 작가의 저작물이고, 플랫폼은 그 저작물을 배포할 권리를 연재료 등의 형식으로 대가를 지불해 일정기간 독점적으로 구매하는 것이다.

 

작가-플랫폼의 대립이 작가-독자, 플랫폼-독자로 확장되는 동안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작가들이다. 실제로 지체상금을 낸 것은 물론, 심적 피해까지 입었다. 레진의 잘못이 있으면 합당한 보상을 하겠다던 레진은 3개월의 유예기간으로 화답했다. 한 블로거는 지각비 폐지를 환영하며, 작가는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훈계조의 글을 쓰기도 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레진의 ‘지각비 폐지 결정’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 뒤에 붙은 3개월의 유예기간은 환영할 수 없다. 작가와의 계약은 쉽게 날리면서, 본인들에게 또다시 선택의 분기점이 생기자 그 판단의 시간을 유예하는 모습은 철저하게 감시하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사업자의 입장을 작가나 독자가 차분하게, 또는 순진하게 기다릴 일도 아니다. 다양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연재 작가들이 기일을 맞추지 못한다면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 지각비에 항의하니 지각비 시스템을 점검할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 시스템에 한계가 보인다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수익을 개선할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건 작품을 배포하는 회사지,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아니다. 주간연재에 대한 불만과 건강문제등 피해가 지난 몇년간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간연재 분량은 이전보다 늘었고, 작품의 퀄리티 또한 높아지고 있다. 불법 공유 사이트는 물론이고 악플이 작가들을 병들게 하는 동안, 작가들의 처우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동안 많은 사업자들이 작가들에게 리스크를 떠넘기고 플랫폼을 운영했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그러나 이젠 더이상 리스크를 작가에게 떠넘기기를 ‘차분하게 기다려선’ 안된다.

 

끝으로, 지금의 현상 뒤에 작가들의 싸움이 있었음을 잊어서도 안된다. ‘시끄럽게 떠드는’ 작가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비로소 문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신뢰가 깨져버린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신뢰의 비용은 비싸고, 다시 신뢰를 얻기 위해선 몇 곱절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단 레진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개월간 레진의 모습에 4년전 스스로를 ‘로켓’에 비유하며 올라타기를 요구하던 때의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는지는 분명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 본 기고문은 웹툰인사이트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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