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웹툰 '무주의 맹시' 리뷰-운명에 겁먹지 않기


무주의 맹시 inattentional blindness


눈이 특정 위치를 향하고 있지만 주의가 다른 곳에 있어서 눈이 향하는 위치의 대상이 지각되지 못하는 현상이나 상태.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운명, 그 달콤한 구속


지금까지 섭렵한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 등을 살펴보면 로맨스를 완성시키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바로 '운명'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주의 맹시' 또한 두 주인공 사이 강력한 운명이 작용하는데 하필이면 그것이 삼신의 저주다. 삼신은 주세아와 하주환이 태어나기 전, 두 사람의 운명은 아주 험난할 것이지만 대신 두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명이 달라질 것이라고 태몽을 통해 예언한다. 이런 저주 때문에 두 사람은 주변에서 사귀는 거 아니냐고 오해를 받을 정도로 사사건건 얽히고 붙어 다니게 된다. 두 사람은 저주를 풀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다 써보지만 안타깝게도 소용이 없었다.




왜 이렇게 로맨스에서는 운명이 중요한 걸까?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하고 주체적인 삶을 꿈꾸면서 사랑에서만큼은 왜 절대적인 존재에게 기대려고 하는 걸까? 아마 운명이라는 굴레 자체가 누군가에게 특별함을 선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랑이란 게 본디 그런 거 아닐까. 비록 남들 눈엔 내가 흔하고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내 사람에게만큼은 유일하고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



▧몸도 자라고 맘도 자라고


주세아와 하주환은 자라면서 쭉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고 심지어 사는 곳도 같은 아파트다. 이런 설정 덕에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되어가는 서사가 하나 더 덧입혀진다. 이 설정으로 작품이 얻어가는 게 뭘까. 둘 사이 친근함이 묻어나는 투닥거림에서 유발되는 소소한 재미? 그것도 맞지만 사실 가장 큰 성과는 하주환을 순정파 남주인공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쭉 한 여자만 좋아해 온 지조, 거기에 섣불리 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애틋함이 더해져 독자 입장에서는 하주환에게 호감을 품을 수밖에 없다.



훤칠한 외모에 다정하고 세심한 성격까지, 사실 작품 속에서 하주환은 단점을 찾을 수 없는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다. 하지만 주세아는 어릴 적 코흘리개와 울보의 기억만 가지고 그를 가족처럼 대한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고 하주환은 자신의 마음을 꼭꼭 숨기고 태연한 척 지낸다.


하지만 다른 작품처럼 답답할 정도로 진심을 외면하고 부정하고 결국 여자 주인공이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실 나 너 좋아해.' 하는 뒷북을 치진 않는다. 지금의 관계마저 잃게 될 까 봐 걱정하긴 하지만 비교적 일찍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관계를 진전시켜 나간다. 주세아 또한 그의 마음을 눈치챈 후 자신의 마음이 어느 쪽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확실히 태도를 정하려 노력한다. 주인공 사이 무의미한 감정싸움과 시간 끌기가 없다는 게 이 작품의 미덕 중 하나이다.



▧소문에 대한 교훈


이 작품에서는 계속해서 거짓된 소문이 등장한다.


첫째는 주세아가 중학생 시절 겪은 소문이다. 하주환을 좋아했던 친구가 주세아와 그의 사이를 의심하고 그녀를 비난했고, 학교에는 주세아가 고의적으로 친구를 속인 것으로 소문이 났다. 이 일로 세아는 큰 상처를 받게 되고 결국 트라우마까지 생기고 만다.


둘째로 이주희에 대한 소문이다. 이주희는 귀신이 꼬이는 주세아에게 관심을 갖고 접근하지만 주세아는 단짝인 지연이 '귀신을 보고 질 나쁜 언니'라는 말만 듣고 그녀를 멀리한다. 이주희는 주세아가 자신을 피하는 것을 알면서도 끈질기게 다가가고 덕분에 주세아는 진심을 느끼고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이주희는 후에 주세아가 저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셋째로 노해를 둘러싼 소문이다. 노해는 산신과 구미호들로부터 혈육인 노명을 배신했다는 오해 속에서 살아간다. 노명이 노해를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건 사실이지만 노해는 노명이 마고신과 어떤 거래를 했는지 아무것도 모른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를 해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결국 세 가지 소문 다 사실이 왜곡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모두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겼다. 소문은 결국 분풀이가 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 맘껏 미워하고 싶을 때 소문은 더욱 무성해진다.  작품 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주세아가 특유의 순수함과 밝은 성품으로 소문의 덤불을 헤치고 결국 진실에 다가선다는 점이다. 지연이 계속해서 이주희를 음해하더라도 자신이 보고 느낀 주희의 모습을 믿고 결국 그녀와 친해졌고, 하주환과 노해가 서로를 경계하며 멀리할 때 관계를 호전시키려고 노력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어느 쪽 하나 감정 상하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러운 태도로 설득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그녀를 더없이 사랑스럽게 만든다.




▧ 살아가면서 꼭 지키고 싶은 것


주세아와 하주환이 저주를 풀기 위해 소원나무에 소원을 빈 후, 주세아는 점점 산의 정기가 강해지고 금희와 성해에게 산신이 되면 저주를 풀 수 있을 거라는 조언을 얻는다. 그녀가 산신 후보가 되자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긴 묘곡골 정괴들이 수시로 그녀를 위협한다. 그녀는 목숨의 위협을 받고 겁을 먹지만 가족과 친구들에게까지 해코지가 뻗칠 수 있다는 북한산신의 설명을 듣고 끝까지 버티기로 각오를 다진다.



그러던 중 자신에게 저주를 건 신이 삼신이 아니라 저승삼신이라는 걸 알고 거기다 자신은 본래 불행할 운명이었지만 주환과 얽히면서 그의 행운을 나눠 받았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 거기에다 노해 또한 자신의 누나인 노명의 행운을 끌어다 써서 목숨을 건사할 수 있었다는 과거를 알고 그에게 느꼈던 막연한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는다. 노해는 과거 누나를 죽게 만든 것 때문에 마음에 부채감을 갖고 있었고 또다시 주세아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주세아는 오히려 넌 혼자가 아니라고 자신이 함께 있을 거라며 그를 위로한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이타적이다. 자신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희생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자신이 가져야 할 행운이 줄었다는 걸 알아도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이기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 진심으로 남의 행복을 최우선 순위로 두는 게 가능한 걸까?


나는 작품 속에서 그들에게 두려움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 그들은 어떤 상대와 싸우든 어떤 어려움이 맞닥뜨리든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간절히 지키고 싶은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때로는 미련할 정도로 용감해졌다.


솔직히 인정하자. 사람은 혼자 있을 때 가장 약해지고 겁쟁이가 된다. 흉흉하고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끝내 사람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타인에게 받을 상처를 감수하고서라도 외로움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끝내는 자신의 곁을 지켜준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걸 내어줄 각오를 하는 그 신비한 순간에 희미한 기대감을 품고 있어서는 아닐까.



▧ 결국 절실함이 운명을 바꾼다



한편 노명을 사랑했던 호조사 청수혁은 노해를 원망하는 마음에 그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인 주세아를 고통의 공간에 가두려 하고 그 과정에서 공격당한 하주환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마지막 순간 주세아는 간절한 마음에 마고신에게 소원을 빌고 마고신은 하주환의 기억을 지우고 그와 다시 만나지 못하는 조건으로 그를 구해주고 청수혁에게 천벌을 내린다.


다만 이 거래에는 조건이 붙었다. 하주환이 기억을 되찾으면 만남을 허락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하주환은 주세아를 잃고 살아가다가 알 수 없는 상실감에 휩싸인다. 그는 어렴풋한 기억을 뒤져가며 결국 그녀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성해는 그의 앞에 나타나 산신이 된 주세아와 사람인 하주환의 시간이 다르다며 포기하라고 하지만 그는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다며 주세아와의 인연이 끊기지 않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재회로 이야기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돌이켜보면 이야기가 전환되는 결정적 순간엔 늘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 이야기 초반에 저주를 풀어달라는 하주환과 주세아의 소원이 있었고, 살고 싶다는 간절한 기도가 신에게 닿아 노해는 부활할 수 있었고, 진심으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고 나서야 주세아는 노명의 과거를 볼 수 있었으며, 하주환을 살리고 싶다는 주세아의 간청에 마고신이 기꺼이 응답했다.


신의 마음대로 사람의 운명이 바뀐다는 사실이 불공평한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신은 사람이 최후의 순간 기댈 수 있는 창구이자 구원자의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사람은 신을 원망하면서도 궁지에 몰린 순간 자신도 모르게 신을 찾게 된다. 조금 나약하고 모순적이면 어떠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 늘 미래를 향한 불안감에 떨어야 하는 사람에게 그 정도 이중성은 눈감아줘도 되지 않을까. 어떤 방식으로든 내일로 한 발 나아갔다는 것에 삶의 의미가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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