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세이) "문제의 해결 이후, 그 영웅과 우리가 가지는 기대와 행동은 또 다른 이야기다" 왓치맨(Watchman)

문제의 해결 이후, 그 영웅과 우리가 가지는 기대와 행동은 또 다른 이야기다. 


미국은 패도국(霸道國)이다. 이 국가는 19세기 유럽의 전란으로 당대 지식인들을 모두 흡수한 자유의 여신이기도 했지만 그 탄생부터 원주민의 학살과 수십 척의 노예선들이 오가던 야만의 짐승이기도 했다. 이 아이러니하고 다이나믹한 문화의 충돌이 20세기 우리에게 신문명을 선사했지만 그 속에 존재하는 어두운 이면을 전 세계가 애써 외면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시간 속 우리가 무엇에 열광했고 무엇을 증오했고 또 어떻게 선동되었으며 무엇을 잃고 놓쳤는지에 대해 철저히 80년대 감수성으로 표현한 작품이 바로 글 앨런 무어 / 그림 데이브 기번즈의 작품, [왓치맨(Watchman)/ 1986년]이다.

영미권 최고의 스토리작가로 평가받았던 앨런 무어는 표지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는 [배트맨: 킬링 조크(Batman: Killing Joke) / 1988]의 스토리 작가이기도 하고 이 외에도 [미라클맨(Miracleman / Marvelman) / 1982-1984], [스워프 씽(Swarp Thing) / 1984- 1987], [프롬 헬(Fron Hell) / 1989], [젠틀맨리그(The League Of Extraordinary Gentlemen) / 1999 - 휴재 ]등 여러 작품의 스토리를 담당하며 그 시대정신을 담아 높은 점수를 받는 작가다. 작화가 데이브 기번스의 본명은 데이비드 체스터 기번스(David Chester Gibbons)이고 영국 출생이다. DC에서 작화가, 스토리작가, 컬러리스트 등으로 활동했고 최고의 대표작은 역시 왓치맨이지만 스토리작가와 컬러리스트, 혹은 작가화 참여했던 대표작으로는 그린 랜턴[GREEN LANTERN]이 있다. 


우린 3가지 요소를 들며 이 작품의 맛을 느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작품이 나온 80년대 후반 기준으로 봐도 미국은 세대를 불문하고 전쟁에 전쟁을 거듭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1914년부터 4년간 치러진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하였다. 1929년부턴 대공황을 맞이하게 되고 그 여파는 1940년까지 지속되었다. 1년 뒤 곧바로 진주만 습격 사건으로 세계 2차대전 참전을 결정했고 이 전쟁은 1945년 일본에 원자탄을 놓고 오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1950년부턴 이데올로기의 모든 쓰레기가 집약되어 터져버린 동아시아 30년 전쟁(6.25전쟁)에 또 다시 참전하였고 또 10년도 되질 않아 통킹 만 사건을 구실로 1964년에 참전한 베트남전쟁을 무려 1974년까지 힘을 쏟는다. 만약 우리가 이 듣기만 해도 숨 막히는 전쟁의 역사 속 살았던 미국인이었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두 번째는 앞서 말한 외부적인 요소를 떠나 미국 내부적으로도 엄청난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1829년부터 100년 가까이 펼쳐져 1920년에서야 모든 주의 헌법수정 비준을 받은 여성참정권 운동과 1909년부터 준비되어 1920년대부터 일어나 6,70년대까지 지속되었던 흑인 민권(인권) 운동, 또 1920년대 대공황의 시대에 태어나 유년, 청년 시절을 세계 2차대전과 함께 보낸 기억을 가지고 있는 비트 세대(Beat Generation)의 등장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50년대부터 문화 저항운동(사실 운동이라기보단 행동으로 보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지만)의 씨앗을 뿌려나갔고 7, 80년대 히피 문화에 큰 영향을 주는 등 미국은 내부적으로도 문화의 격동기에 있었다. 여기서 중요 포인트는 바로 문화의 충돌이다. 왜냐하면 문화가 충돌하는 지점에선 새로운 사고와 사조, 흔히 말하는 천재들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체화하는 과정에서 "왜 이렇게 해야만 할까." / "왜 이렇게 되었는가." 등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지면 그 충돌의 합의점을 찾기 위한 사고를 하게 되고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가 대중의 호감을 얻으면 현 세대의 문화에 저항하는 큰 흐름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미국 만화의 역사, 그중에서도 코믹스 코드(Comics Code Authority)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1930년대부터 새로운 매체의 등장에 겁을 먹은 기성세대들의 불만과 공포가 만화를 비난하는 수준으로 존재했지만 1954년 프레드릭 웨덤(Fredric Wertham)의 [순수의 유혹(Seduction of the Innocent)]이 출간되면서 본격적인 탄압의 대상이 된다. 결국 만화 출판사들은 심의 기준인 코믹스 코드를 통해 사전심의를 받게 되었고 빛나던 작가들의 상상력과 만화에서만 가능했던 여러 표현들이 제단 되었다. 덕분에 당시 주류를 이루던 공포, 스릴러 만화의 인기가 시들해졌고 만화이기 때문에 허용되었던 많은 매력들을 선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시 매운 것은 예전보다 조금은 명랑해진 마블과 DC가 선사한 슈퍼히어로 만화였는데 이들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 소개되는 미국 만화의 대표주자들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작가와 출판사들의 소소한 저항과 실험들이 196,70년대를 거치며 여러 사건과 이슈를 만들어냈고 코믹스 코드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출판사들의 상술에 의해 탄생한 그래픽 노블이란 단어와 등장과 영웅들의 내면을 좀 더 현실성 있게 다루고자 노력한 작가들 사이에서 1986년 기념비적인 두 작품이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왓치맨]이다.


그 이전에도 여러 히어로들의 내면의 세계를 다루고 종종 표현되어 왔지만 프랭크 밀러(Frank Miller)의 [배트맨 : 다크나이트 리턴즈(Batman Dark Knight Returns)/1986)]가 히어로 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춰 이전과 다른 집요함을 보여줬다면 엘런 무어와 데이브 긴 번즈의[왓치맨]은 그 히어로 집단의 흥망성쇠 속 개개인의 태도와 왜곡을 통하더라도 큰 해결을 보려는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 남다른 깊이감을 보여줬다. 특히 [왓치맨]은 앨런 무어가 늘 가지고 있는 시대와 국가의 문제의식이 등장하며 "적을 위한 적을 만드는 것인가."/ "진짜 평화란 어떻게든 유지만 되면 되는 것인가."/"영웅은 필요한 것인가."를 딱 미국의 불안감과 의심을 담아 표현했다. 그리고 이런 시대의 화두와 세대의 화두, 만화계의 화두 모두가 접목된 점이 TIME MAGAZINE이 선정한 1923년 이후, 영어 소설 베스트 100권 중 만화로는 유일하게 선정된 이유이기도 했다.


우린 영웅을 추대하고 그 영웅들이 단숨에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늘 기대하는데 이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개인의 인생엔 끝이 있지만 인류, 문명이란 관점에선 각기 다른 이유로 등장한 영웅들이 각 기 다른 세대를 대변하며 겹겹이 쌓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웅들은 닥터 맨해튼과 달리 사람이기에 결국 내면의 고통을 겪는 보통의 존재들이다. 또한 우린 수많은 역사에서 그 쓸모가 다한 영웅들을 너무 쉽게 버려 그들의 정체성에 비참함을 남기는 경우도 존재했다는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획일화된 유렵의 중세 시대엔 영웅은 늘 필요했지만 지금처럼 다양한 사건이 잘 기록되고 전승되어 교훈을 주고 이미 지구촌 대부분의 문화권들이 만남을 통해 차이의 이해와 존중의 태도를 익히려는 시대에 꼭 필요한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영웅은 어려운 문제, 풀기 힘든 문제를 해결하면서 등장하는 달콤한 해갈의 존재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 이후, 그 영웅과 우리가 가지는 기대와 행동은 또 다른 이야기다. 이것을 영웅이 된 존재가 스스로 자각하는 과정이 잘 표현한 작품은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배가본드] 15권이다. 사사키 코지로의 양아버지(스승)인 카네마키 지사이가 몇 년간 마을의 골칫거리가 된 지난 영웅 후도 유게츠사이를 죽이자 마을 사람들이 또다시 자신을 마을의 영웅으로 모시려는 섬뜩한 장면에서 “이번엔 내가 마을의 구세주라고? 싫소. 우린 그 오두막이 좋소."라며 거부하는 묘사가 있다. 반대로 영웅의 주변 인물이 그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영화 [다크나이트(Dark Knight) / 2008]의 조커가 남긴 "영웅으로 살다 죽던지 아니면 오래 살아서 악당이 되던지."라는 대사가 있다. [왓치맨]과 함께 참고하며 감상하면 여러 생각을 해보는 것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영화화는 2009년에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잭 스나이더 감독의 미장센이 최고 정점을 찍은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이 모든 내용들을 가장 함축적으로 각인시키는 부분은 영화의 오프닝이다. 아무런 내용도 모르고 볼 때는 밥 딜런의 컨츄리송 위에 올려진 캐릭터의 소개 영상 같지만 만화를 보고 영화도 보고 또 앞서 말한 문제의식들에 대한 정보를 알고 보면 오프닝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만화책도 영화도 두고두고 계속 보게 되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두 권으로 시공사에서 2008년 1쇄가 출판됐으며 현재 2016년 6쇄가 발행되었고 정지욱 작가가 옮겼다. 참고로 구할 수 있다면 1권은 초판본의 표지를 구하고 싶다. 표지를 바꾼 것이 좀 아쉽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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