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세이) "대체 이 두 권의 책 속에 지금까지 본 몇 편의 영화들이 지나간 것인가"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 다크나이트 리턴즈(Batman Dark Knight Returns)>

"대체 이 두 권의 책 속에 

지금까지 본 몇 편의 영화들이 지나간 것인가"


알고 나면 깜짝 놀랄 배트맨의 탄생은 무려 1930년대로 올라간다. 1938년 만화잡지 [액션코믹스 #01]에 연재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슈퍼맨(Superman)]을 보며 차별화된 슈퍼히어로를 만들고자 했던 작가 밥 케인(Bob Kane / 1915~1998)이 빌 핑거(Bill Finger / 1914~1974)와 함께 디자인하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1939년 5월, [디텍티브 코믹스(Detective Comics)#27]에 첫 선을 보였는데 기존의 슈퍼맨을 위시한 여러 아류작들과 다르게 설정한 인간적인 고뇌와 능력을 이겨내고 수련하며 어필하던 모습에 곧바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참고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영원한 고전 명작으로 추앙받는 [킹콩(King Kong / 1933)]이 등장한지 고작 6년 뒤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슈퍼맨과 함께 배트맨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우리와 함께한 캐릭터인지 (혹은 그 긴- 세월을 버텨낸 캐릭터인지) 크게 설명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만큼 여러 기술과 능력, 무기와 장비들, 멘탈, 행동, 주인공 브루스 웨인의 비하인드스토리들이 첨가되고 발전해 오늘날에 이른 것은 사실이지만 또 그만큼의 퇴보와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었다. 특히 미국의 사회단체들이 1940년대 말부터 만화를 저급한 문화로 지목하고 어린이들에게 악영향(폭력과 범죄)를 미친다며 검열과 억압의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덕분에 자유로움을 만끽해야 하는 캐릭터들의 설정과 소재, 이야기들은 교육적이고 공익적인 내용들로 꾸며지도록 종용당했다. 결국 배트맨의 영원한 라이벌 조커가 A학점 받은 조니(그냥 평범한 아이)의 성적표를 훔쳐 달아나면서 "HA HA! I'VE MADE SOMEONE CRY!!" (하하! 내가 울게 만들었다!) 외치는 수준의 빌런으로까지 추락하게 된다.

이후, 코믹스(Comics)의 위상은 예전처럼 복원되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그 사이 검열에 대한 여러 작가들의 사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시기의 자세한 이야기는 복잡하고 길기 때문에 다음에 따로 정리하도록 하겠다. 키포인트는 만화에 대한 검열과 간섭으로 작품의 퀄리티가 끝도 없는 하향 평준화되자 이것에 대해 투쟁하고 쟁취해나가는 작가들 및 코믹스들의 긴 역사가 있었다는 점.) 그리고 1970년대부터 시작해 1980년대 중반, 법적인 문제를 넘어 문화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은 그래픽노블(Graphic Novel)이란 단어가 점차 보급되었고 그 본격적인 부흥의 최고 위치이자 시작점들 속에 바로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 다크나이트 리턴즈(Batman Dark Knight Returns)/1986)]가 있었다. 당시 몇몇 만화가들이 보여준 독보적 퀄리티는 아이들만 보는 저급한 책, 문화라는 인식을 바꿔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기록들을 보면 그가 작업할 당시 배트맨의 캐릭터와 분위기, 위상은 오늘날 우리가 배트맨이란 단어를 듣고 느끼는 무게와 많이 달랐다. 로빈과 콩트를 주고 받고 항상 미리 준비된 무기와 상황 장악력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큰 무리 없이 승리를 쟁취했고 여유가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배트맨 내면의 깊은 이야기나 어두운 면을 이끌어 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코믹스(만화책)보단 TV 시리즈가 더 인기를 얻고 있었고 덕분에 코믹스도 TV 시리즈 속의 배트맨의 모습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마치 원작인 [툼 레이더] 게임 시리즈속의 라라 크로포트가 뒤늦게 나온 영화 속 라라 크로프트(안젤리나 졸리)의 인기와 영향을 받게 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TV 시리즈의 인기 하락과 함께 배트맨 코믹스도 사양길을 걷게 되고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DC코믹스가 여러 해결 방법을 모색하던 그 결과물로 오늘날까지 영원한 만화 고전으로 칭송받는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다크나이트 리턴즈]는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설정 된 배트맨의 개성과 무게감은 지금까지 이어져 그를 DC코믹스의 간판 캐릭터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한국 팬들에게 프랭크 밀러는 영화[씬시티(Sin city)/2005]와 [300(300)/2006]의 원작자로 더욱 유명하다. 특유의 강렬한 빛의 대비와 불친절한 연출이 강점인 그는 만화사를 그 어떤 역사가가 기술한다 해도 앨런 무어와 함께 적어도 한 페이지 이상은 장식할 수 있는 인물이다. 1957년 미국 동부 대서양 연안의 메릴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1979년 맹인 슈퍼히어로 [데어데블(DareDevil)/1979]의 스토리 작가로 인기와 명성을 얻고 DC에서 발표한 [로닌(Ronin)/1983]에 글/그림을 맡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갔다.

위에 말한 데어데블이 맹인이라 설정과 13세기 주군을 잃고 명예를 잃은 사무라이가 21세기에 다시 태어난다는 로닌의 설정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프랭크 밀러는 캐릭터 특유의 약점과 단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주인공의 밝고 멋진 모습과 함께 어두운 면을 부각할 수 있는 설정과 콘셉트를 좋아하는데 오늘 소개할 [배트맨:다크나이트 리턴즈]나 이후 이어진 [배트맨:이어 원(Batman: Year one)/1987], [배트맨:스트라이크 어게인(Batman:Strike Again)/2001] 시리즈, 또 [300(300)/1998], [씬시티(Sin City)/1991] 등에서도 어둡고 묵직한 캐릭터의 내면에 집중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참고로 프랭크 밀러가 위에 언급한 모든 작품에 글/그림을 도맡은 것은 결코 아니다. [데어데블] 시리즈나 [배트맨:이어 원], [배트맨:스트라이크 어게인]등은 글 작가로 참여한 케이스로 밀러의 글만큼이나 멋진 그림을 선사해준 작가들이 함께 했음 또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한다.




[배트맨:다크나이트 리턴즈]의 주된 스토리는 배트맨 은퇴 후, 다년간 척박해진 브루스 웨인의 내면을 시작으로 다시 그를 세상에 불러내는 돌연변이 무리의 등장, 무너진 삶과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나약함을 극단의 폭력으로 감추는 투페이스, 배트맨의 등장으로 다시 웃음과 광기를 되찾는 조커, 당시 시대상황(1986년의 냉전시대)을 접목하여 배트맨과 대립하게 되는 슈퍼맨 등이 등장하는 4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이 4개의 챕터를 모두 본 뒤 처음 든 생각은 "대체 이 두 권의 책 속에 지금까지 본 몇 편의 영화들이 지나간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곧바로 이 작품의 판매 기록이나 수입 등을 찾아보기보단 수많은 배트맨 시리즈에 이 작품이 미쳐 온 영향력을 상기하며 고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연출은 2017년 한국에서 만화를 좀 본다는 독자들도 불편할 만큼 불친절하다. 많은 양의 대사들 때문에 "뭐야? 이게 만화야? 소설이야?"라고 투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또 연출상 작품 속 아나운서가 많은 대사를 전달하는 부분에서 독자가 연출 의도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집중해 읽다가도 일률적인 컷 배치와 대사의 간격이 그 집중을 방해하기도 한다. 한 번에 쭉- 읽기엔 어려운 페이지들이 종종 있다는 얘기다.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1986년 작품임을 감안하여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복붙컷"들이다.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미디어에 등장하는 아나운서나 인터뷰하는 대통령의 언론 고문 척 브릭 씨의 얼굴이 4컷이나 연이어 똑같이 나온다는 것이 연출 의도라는 면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지만 개인적으론 좋게 보이진 않았다. 아주 작지만 이 작품의 옥에 티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불친절한 연출도 감안할 수 있고 좀 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내면에 집중해보고 싶다면 반드시 보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브루스 웨인과 짐 고든의 수많은 내면의 내레이션을 보고 있으면 정말 타인에겐 말할 수 없는 상황을 비꼬는 시각, 스스로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는 약간의 나르시시즘이포함된 허세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 사이에 갈팡질팡 거리다 결국 밖으론 정제된 행동이나 말투로 나올 때 캐릭터 내면의 부조리 함이나 아이러니, 슬픔, 광기 등도 독자에게 잘 전달된다. 또 이런 것이 액션 연출이나 전투신의 끝에 한 페이지 통으로 쓰게 되는 컷들과 화풍에서 몰려오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더욱 배가될 수 있게, 독자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역할로도 더 할 나위 없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역사적 의미를 알고 볼 때의 감동이 다르고 마네의 올렝피아 또한 그 시대의 엄숙함을 알고 보면 전과 다른 느낌이 든다.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다크나이트 비긴즈] 또한 앞서 말한 당시 미국 만화시장의 분위기를 알고 본다면 작품 외적으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그것에 주력해 글을 썼음을 밝힌다.


한국에선 세미콜론 출판사에서 나왔고 책값은 권당 15,000원으로 총 2권이며 김지선 작가님이 옮겼다.


<< 참고 자료 >>

Comments (2)
  • 와아~~! 배트맨 팬으로 정말 좋은 글입니다.
  • 이 작품 리뷰를 웹툰 인사이트에서 보다니.. 감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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