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리뷰 부문] 고양이 낸시의 귀여움 속에 숨겨진 삶의 의미




최근 들어 딸아이가 유독 고양이 인형에게 무한의 애정을 보내면서 우연히 길에서 만나는 길고양이에게도 급관심을 보이고 있어 덩달아 고양이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져가고 있는 와중에 엘렌 심 (Ellen Shim) 작가님의 <고양이 낸시 (Nancy the Cat)>를 만나게 되었다. 제목부터 고양이가 언급되고 있고, 살인적인 귀여움으로 천적인 생쥐들까지 무장해제시킨고양이 낸시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어 친근감을 가지고 책에 접근할 수 있었다. 딸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교감을 나누고 싶은 마음도 컸었다.



<고양이 낸시>를 읽으며 무엇보다도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는 삶의 동반자로서 고양이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얼마 전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 떠올랐다. 애묘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하루키는 어린 시절부터 꽤 많은 고양이를 키웠는데, 이 에세이집에서는 그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2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한 고양이 뮤즈의 비밀에 대해 밝히고 있다. 장수 고양이의 이름 뮤즈는 하루키의 아내가 푹 빠져 있던유리의 성이라는 순정만화 속 등장인물 이름을 본따서 지은 것이다. ‘뮤즈는 하루키와 여러 가지 비밀과 추억을 공유한고양이다. 그 비밀 중 하나는 뮤즈가 하루키의 출세작인 노르웨이의 숲탄생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하루키는 에세이집에서 뮤즈는 예쁘고, 영리하고, 튼튼하고, 숱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었던 같이 살기에 매우 이상적인 고양이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와 고양이 사이에는 늘 가벼운 긴장감이 흘렀지만, 그건 그것대로 또 상당히 안정적이었고, 또그러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고양이는 흔치 않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뮤즈를 만난 것은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는 것이다. 하루키의 사례처럼 <고양이 낸시>도 만화의 모티브가 된 고양이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엘렌 심 작가님과LA에서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가 그 주인공은 아닐까? 이 만화는 그 고양이에게 건네는 작가님의 감사의 인사 같은 것 아니었을까?



<고양이 낸시>의 이야기 흐름에 변화를 가져오는 가장 결정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돌아온 여행자 헥터의 등장일 것이다. 오랜 기간 여행을 하면서 마을에서 떠나 있었던 헥터는 어린 생쥐들이 스스럼없이 고양이 낸시와 어울리는 모습을보면서 엄청난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헥터는 생쥐로서 고양이에 대해 본능적으로 느낄수 밖에 없는 두려움과공포를 잃어버린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위험을 상기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다.



밖에 애들이랑 노는 저 커다란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낸시”, “더거씨네 딸...?”, “우리 아들 친구

고양이!!! 고양이라고요 여러분...! 우리들의 천적!!” (p. 159)



하지만 마을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고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낸시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진심을 깨닫고, 종국에는 낸시의 든든한 지지자로 변모하게 된다. 낸시는 고양이이지만, “더거씨의 사랑스러운 막내 딸이었고, “지미의 소중한동생이었으며, “친구들을 배려하는, 모두가 너무나도 아끼는 낸시였던 것이다



제가 틀렸어요... 눈을 가리고 있었던 건 저였어요. 고양이 낸시만 보느라 다른 낸시들은 못 봤어요.” (p. 225)

 

 

평범하게 태어난 대다수처럼 고양이 낸시는 자신이 남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의식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고, 일말의 의심도 없이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이 생쥐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생쥐의 천적인 고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은 낸시에게는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허물어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헥터는 낸시가 고양이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말이예요. 저는 고양이인 낸시도 낸시의 한 부분이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낸시한테 낸시가 고양이라고 언제 알릴 거예요?” (p. 231)



어쩌면 우리는 모두 고양이 낸시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왜 여기에 있는가?'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공통된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삶의 형태는 다르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과 그것이 누적되어 이루어지는 역사와 사회구조에 좌우되는 삶을 살고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인종과 국가, 성별, 문화 등에서 기인한 수많은 차별을 마주하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다수자들이 진리라고 강요하는 것, 불편한 진실에 맞서 소수자로서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살리며 세상을 향해 작지만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는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양이 낸시>의 이야기처럼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삶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차별과 질책에 굴하지 않고 지금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작지만 끊이지 않는 목소리들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을 믿어 의침치 않는다.


 

 


딸아이는 고양이 낸시의 살인적인 귀여움에 무한한 열광을 보내고 있다. 거실 곳곳에 제멋대로 붙여져 있는 고양이 낸시의 스티커를 보면서 아이와 또 하나의 추억을 공유했다는 생각에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은 <고양이 낸시>의 이면에존재하는 철학적인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어린 나이라서 아이가 성장한 후 다시 한번 <고양이 낸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다. 지금 보다 진보한 세상에서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아빠와 딸은 어떠한 대화를 나누게 될까? 멀지 않아 도래할 그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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