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리뷰부문응모] 웹툰 에이머를 통한 잘못된 사상에 대한 고찰

※참고 사항※

1. 작품의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이 같기 때문에 혼란을 피하기 위해 작품을 지칭할 때는 '에이머', 인물을 지칭할 때는 '주인공'이라 쓰겠다.

2. 출처가 필요하다 생각되는 내용은 해당 책의 이름을 <>로 남기거나 (출처)으로 표시한 뒤 링크를 남겼으며 그림의 출처는 그림 아래의 설명에 남겼다.

3. 논의 중 예시로 든 일부 다른 작품의 내용이 약간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 <얼라이브>(1993년 영화), <코드기아스 부활의 를르슈>(2019년 애니메이션 영화)

4. 본 리뷰는 에이머를 구독하지 않는 사람들 또한 읽을 수 있도록 작성되었으며 따라서 작품 내의 중요한 반전을 상당히 포함하고 있다.



머리말

"작은 우연은 역사를 만든다. 지구를 침공항 이성인 팜킨 일당과, 그들을 막아선 초월자 에이머와 지구인의 이야기!"


네이버 웹툰 페이지에 기재되어 있는 에이머의 소갯글이다. 그 소갯글 그대로 에이머의 큰 흐름은 주인공을 포함한 지구인과 이성인(우리가 흔히 외계인이라 부르는 존재) 사이의 전투와 전쟁이다. 


현재 지구에는 이성인들을 상대하기 위한 세력이 3개가 존재한다. 레테의 추종자들(주인공이 소속하게 됨), 연방, 그리고 랑그레누스. 이들은 원래 하나의 세력이었으나 그들을 묶고 있던 중심인물(Mr.하드캐리)이 사망하면서 갈라져 서로 정적이 된 상태다. 레테는 22년 전 지구에 찾아온 최초의 이성인이다. 그녀는 지구 수준을 뛰어넘는 선진 과학과, 물리 법칙을 뛰어넘는 초능력을 부여해주는 '하얀 새'라는 존재를 데리고 있다. 레테에게 하얀 새를 받아 초능력자가 된 사람을 작중에서는 '하얀 새의 주인'이라 부르는데, 하얀 새와의 교감을 통해 더욱 강한 초능력을 구사할 수 있다. 주인공은 어떤 우연으로 인해 레테가 아닌 다른 루트로 하얀새를 얻게 되어 초능력을 사용하는 한 소년이다.


언뜻 흔해빠진 소년만화로 보이기 쉬운 이 웹툰은, 그러나 전쟁이라는 큰 흐름을 따라 전개되는 각각의 에피소드 속에 여러 사회 문제, 사상, 철학 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소년만화와 구별된다. 작중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주제들은 신분제, 집단 괴롭힘, 생존(번식), 전쟁과 윤리 등이 있으며 이는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 거리와 메세지를 던진다.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볼 내용은 작중 등장인물인 록히와 멜로나의 사상이다. 두 인물의 사상은 모두 생존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결과물은 사뭇 다르다. 록히는 자기자신을 위해 힘을 추구하고 멜로나는 인류의 생존이라는 대의를 추구한다. 그러나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만큼 공통점도 가지고 있는데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점, 지나치게 세상을 단순화시킨다는 점, 그리고 공교롭게도 두 사상 모두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이 글의 구성이다. 우선 본제에 들어가기 전 1장에서 전쟁의 개념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이어지는 2장, 3장에서 본격적으로 록히와 멜로나의 작중 행적과 사상을 논할 것이다. 4장에서는 마키아벨리즘을 통해 2장, 3장에서 각 사상에 내렸던 평가에 대해 다시 한 번 검증할 것이다. 5장에서는 잘못된 사상의 탄생 과정에서 어린 시절 경험의 중요성을 논할 것이며, 마지막 6장에서는 우리들 자신이 이러한 잘못된 사상에 동조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인 단순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장 전쟁에 관하여

본제로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전쟁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제시한 주제들 중 특히 특별한 것이 바로 이 전쟁이다. 에이머의 큰 줄기는 지구와 이성인 사이의 전쟁이며, 동시에 그 속에서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전쟁과도 같은 삶을 조명하고 그들의 삶을 통해 여러 메세지를 던진다. 앞으로 살펴볼 두 캐릭터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은 에이머라는 작품, 또 이 글 전체를 꿰뚫는 키워드이다.


우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쟁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총성이 오가는 시가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인들, 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민간인들. 살인이라는 가장 반인륜적인 행위가 허용되는 시점에서 더이상 법은 사람들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지 못하며 그로인해 겪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할 잔혹한 비극이 일어난다.


사실 군인이라는 직업은 오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일어나는 비극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지 모르겠다. 문제는 전쟁에 휘말린 민간인들이다.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자신들을 지킬 수단이 마땅치 않은 그들은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끼리 자신만의 또다른 전쟁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알다시피, 많은 이들이 그 전쟁을 이겨내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되고, 이겨낸 소수의 사람들 역시 그 후유증을 평생 벗어나지 못한다.



전쟁의 개념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해보자. 프로이센의 군사학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저서 <전쟁론>에서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쉽게 말해 전쟁은 정치적 수단들 중 한 가지라는 것이다(물론 가장 극단적인 수단이다).


정치의 학문적 정의로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출처1). 이를 클라우제비츠의 견해에 적용해보자. 전쟁을 수단으로 하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 이 말을 좀 더 정리하면 우리는 전쟁의 목적이 "힘을 통한 가치의 배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힘'과 '가치'라는 단어에 집중해야 한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는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전쟁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쟁, 즉 총알이 빗발치고 많은 이들의 목숨이 오가는 등의 특정 상황이겠지만, 이 장에서는 그 의미를 넓게 생각해보고자 한다. 위에 제시된 '힘'과 '가치'라는 말을 다른 말로 대체하는 것으로 우리는 전쟁이라는 개념을 더욱 확장시킬 수 있다.


가령 현대사회에서 '힘'이란 단순히 무력 뿐만 아니라 지식, 재산, 인맥 등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가치'에는 자아실현이나 행복 등이 놓일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어떤 수단(힘)을 가지고 어떤 목적(가치)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를 일종의 전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실제 전쟁터에서 "민간인들이 그들만의 또다른 전쟁을 치른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듯 말이다.


또한 '힘'과 '가치'를 각각 전쟁, 즉 어떤 행위의 수단과 목적으로 이해한다면 이를 통해 평가의 척도를 제시할 수도 있다. '수단의 적합성'과 '목적의 정당성'이 바로 그것이다.




2장 록히의 사상 :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정당한가

이성인 록히의 출신 행성 사드에는 유전자 등급법이라는 일종의 신분제가 존재한다. 신분제의 본질은 높은 신분의 사람과 낮은 신분의 사람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각 신분층 사이에는 뛰어넘지 못할 장벽이 존재하며, 전자가 후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사실상 무방하다.


(그림1)유전자 등급법에 의해 사드 주민권을 받지 못한 뤼키드인들은 동물 정도로 취급된다(에이머 40화 중)


그렇기에 신분이란 다시 말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힘'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신분이 높은 자는 힘이 강한 자로서 포식자가, 신분이 낮은 자는 힘이 약한 자로서 먹이가 된다. 신분제를 위에서 정의한 전쟁에 대입한다면 "신분을 통한 존엄성의 배분"이 될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약육강식. 이것이 록히가 내세우는 사상이다.


이성인 록히는 지구인들에 비해 훨등히 높은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지구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 지구인들을 이용한 생체 실험을 이행한다. 이를 통해 더욱 강한 포식자가 되고자 한다. 죄책감 따위는 없다.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포식자가 먹이를 먹는 정도의 일에 지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그림2)록히가 지구인들을 납치해 만든 금지 약물 시험관(에이머 28화 중)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반전이 있다. 사실 록히는 신분제 내에서 포식자가 아닌 먹이, 즉 뤼키드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사드인에게 몹쓸 짓을 당한 누나를 위해 뤼키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사드인을 상대로 재판을 청구했고 그 결과 사드인들은 동물학대라는 죄목이 적용되어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 판례는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그 재판 이후 사드인들의 뤼키드인들을 상대로 한 강력 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러한 현실 속에 사드인들을 상대할 방법이 없던 뤼키드인들은 그 원한을 피해자였던 록히와 그의 누나에게 돌리고 결국 죽이려 들기에 이른다. 압도적인 폭력 앞에 죽음을 직면하게된 그는 결국 지금의 사상에 눈뜨게 되었다.


(그림3)'힘' 그 자체를 정의로서 받아들이게 된 록히(에이머 41화 중)


그렇게 자신의 정의에 있어서 '힘'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신분을 일종의 '힘'으로서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신분제의 부당함을 누구보다도 뼈져리게 겪었을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신분제를 받아들이고 당연시하는 사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신분제의 틀에서 먹이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그에 따라 신분제를 넘어서는 더 큰 '힘'을 갖고자 행성 사드 최악의 범죄집단, 오브 재단에 발을 들인다.


(그림4)절망의 순간 내밀어진 악마의 손(에이머 41화 중)


우리는 이미 약육강식의 사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 때 자연법칙으로까지 여겨졌던 이 사상은 본래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세상을 미개하다며 비판하는 의미로 쓰였던 것이며(출처2) 먹이사슬을 바탕으로 하는 야생에서조차 여러 반례들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빈약한 사상이다. 요는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나 절대적인 약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순간 약자와 강자의 위치가 뒤바뀌게 되는 모순이 발생하는데, 이는 록히 자신이 신분제를 뛰어넘는 더 큰 힘을 찾아 오브 재단에 발을 들인 것, 그리고 결국 열등한 유전자를 가지고도 포식자가 될 힘을 얻는데 성공했다는 것으로도 증명된다.


(그림5)주인공이 나서서 멋지게 요약해 주었다(에이머 36화 중)


결국 싸움에서 패배한 그는 주인공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주인공의 사상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물론 더 강한 자의 주장이 항상 옳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록히의 반응은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록히와 피실험자(지구인)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록히가 지구인들보다 더 강하다고 해서 지구인들에 대해 록히의 주장이 옳은 것은 아니다. 자신이 포식자일 때는 자신의 뜻을 강요하면서 먹이가 되었을 때는 포식자의 뜻을 인정하지 않는 이러한 모습은 그가 가진 사상의 모순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그림6)주인공에게 패배한 이후에도 록히는 자신의 사상을 버리지 않는다(에이머 50화 중)


록히의 사상에 대한 평가를 정리해보자. 지구에 온 록히는 자신의 사상(약육강식)을 가지고 지구인들에게 얌전히 먹이가 될 것을 강요한다. 록히의 사상에 따르면 '힘'은 수단이자 목표 그 자체이다. 그러나 록히 자신의 발자취로 보인 모순점들로인해 우리는 록히의 목적(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어렵다. 더해서 포식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점은 그의 사상이 단순히 옳지 못한 것을 뛰어넘어 얼마나 크게 뒤틀려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할 것이다.


(그림7)이성인 리더 팜킨은 이렇게 말했지만 우리는 이미 그 모순점을 파헤쳤다(에이머 42화 중)






3장 멜로나의 사상 : 목숨은 그 어떤 것 보다도 항상 위에 있는가

이제 또 다른 캐릭터를 살펴보자. 멜로나는 지구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과학력과 군사력을 지닌 랑그레누스라는 조직의 수장이다. 랑그레누스는 유전자 강화 인간 리인포스 테란, 인공지능 전투 사이보그 등을 거느린 사설 군사 조직으로 사실상 무력으로 지구 전체를 굴복시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작중 초반 랑그레누스는 이러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성인에 맞서 전투를 펼친다.


(그림8)비대칭적인 과학기술의 출현에 록히도 당황했다(에이머 25화 중)


멜로나는 주인공을 랑그레누스로 끌어들이고자 노력한다. 주인공과 랑그레누스는 이성인 퇴치라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고 공동전선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을 들은 주인공이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거부하자 주인공을 죽이고 그 힘의 원천, 하얀 새를 탈취하고자 한다. 주인공이 거부한 랑그레누스의 사상이란 인류의 생존이라는 대의를 위해 그 어떠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힘을 추구하며 주인공의 가족을 인질로 잡아 죽이려들기까지 한다.


(그림9)랑그레누스와 멜로나의 사상(에이머 시즌2 94화, 시즌2 74화 중)


랑그레누스는 자신들의 과학력을 공유하는 조건으로 '국가를 포함한 지구상 모든 집단의 무장해제'를 요구했다. 이 또한 인류의 생존이라는 대의의 연장선인데, 멜로나는 지구인들끼리 일으키는 전쟁을 '자해의 칼'이라고 표현하며 인류가 스스로 자신들끼리의 전쟁을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성인들이 등장하고 먼저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들의 정적, 연방이 이성인에게 패해 정치적 입지를 잃자 전세계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랑그레누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강제로 자신을 따르게한다.


(그림10)인류를 통제하기 위해 전세계에 뿌려진 감시탑 겸 포탑 '페를라'(에이머 시즌3 5화 중)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는 점으로 보아 록히의 경우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록히는 더욱 강한 포식자가 되기 위함이라는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 윤리를 져버렸지만 적어도 멜로나에게는 인류의 생존이라는 확실한 대의명분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에이머 독자들 사이에서도 멜로나에 대한 평가는 일부 엇갈린다. 이러한 사상이 아예 잘못된 것이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수한 예들이 존재한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얼라이브>에서 생존자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육을 먹었으나 대부분 사람들, 심지어 먹힌 사람의 유가족들 조차 구조된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정당방위는 어떤가? 폭력을 넘어 살인마저 정당화한다. 또한 법은 형벌이라는 폭력적 수단으로 개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처럼 실제로 수단은 목적에 의해 정당화되곤 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최근 에피소드에서 두 가지 반전이 일어난다. 사실 리인포스 테란은 인간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멜로나 역시 주인공과 같은 초능력자, 하얀 새의 주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림11)리인포스테란의 실제와 멜로나의 정체(에이머 시즌3 1화 중)


그가 하얀 새의 주인이 된 것은 22년 전이었으며, 현재 주인공보다 훨씬 강할 것이라 추측된다. 최소한 그는 자신에게 반기를 든 A랭크(최상위 랭크) 리인포스 테란 요원을 손쉽게 제압할 정도로 강하다. 그럼에도 자신의 능력을 감추며 직접 전선에 서지 않고 다른 요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


멜로나는 어릴 적 일어난 전쟁으로 어머니를 잃었고 얼마가지 않아 이성인 레테에게 하얀 새를 얻어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어머니를 잃은 시점에서 힘을 얻은들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다며 목숨 위에는 그 어떤 가치도 올 수 없다는 사상을 내세운다.


그런 그가 힘을 숨기며 요원들을 대신 사지로 내모는 모습은 언뜻 모순되어 보이나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에게 있어 리인포스 테란은 생명이 아닌 만들어진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리인포스 테란은 편의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이며, 그런 도구가 있는데 굳이 인간인 그가 위험하게 직접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림12)16년 전, 리인포스 테란의 프로토타입으로 탄생한, '생명이 아닌 것'을 죽이며(에이머 시즌3 26화 중)


이정도까지 심각하게 생명윤리를 저버린 그의 행위도 목적이 정당했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을까? 목적에 따른 수단의 정당화는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 장에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이 장에서는 우선 2장에서 록히의 사상을 평가했을 때처럼 멜로나가 내세운 대의명분, 즉 인류의 생존을 위해 사람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부분 그 자체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1장에서 논했던 전쟁에 대한 내용을 기억할 것이다. 전쟁은 정치적 수단이며 극단적인 수단이다. 이와 같은 극단적 수단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정 문제에 대해 양자간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제 3자가 개입해 전쟁 당사자들이 전쟁을 멈추게 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모순이 된다. 싸움이 멈추었을 뿐 그 싸움의 원인이 된 문제가 해결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경우를 살펴보자. 멜로나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전쟁을 멈출 것을 강요하며 지금의 미성숙한 인류에게 무력은 사치라고 말한다. 물론 사치, 즉 경제적 문제로 인해 일어나는 전쟁은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전쟁이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만약 어떤 전쟁이 당사자들의 생존 그 자체를 위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들에게 전쟁을 멈추도록 강요하는 것은 곧 그들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는 곧 그들은 멜로나가 말하는 '인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이 또한 모순을 피할 수 없다.


<코드기아스 부활의 를르슈>에 등장하는 지르크스탄 왕국의 예가 그러하다. 그들의 가장 큰 수입원은 용병 사업이었는데, 를르슈의 제로 레퀴엠에 의해 세계의 모든 전쟁이 멈추는 바람에 재정이 악화되었고 결국 그들 스스로 테러 자작극을 벌여 세계로 하여금 그 군사력을 다시 필요로 하게 만든다. 이들의 자작극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전쟁, 혹은 전쟁 그 자체가 생존의 수단인 경우는 분명히 존재한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예시를 들 수 있다. 일제에 맞서 독립 전쟁을 펼친 우리 선조들은 우리 민족에게 반인륜적인 행위를 일삼은 일본 제국에 맞서 민족의 생존과 독립을 위해 독립 전쟁이라는 수단을 선택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등의 커다란 단위의 충돌 뿐만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충돌, 나아가서 개인 한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극단적 선택에 대한 갈등(자살 또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엄연한 사회 문제임을 상기하자) 또한 실질적으로 인류의 목숨을 위협한다. 이러한 행위를 하나하나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멜로나는 대규모 군사 이동에 대해서만 전쟁이라 명명하며 통제하려들지만 단지 규모가 작을 뿐 이러한 다툼 또한 일종의 전쟁이다. 전쟁은 이러한 작은 단위에서의 다툼이 정치적인 싸움으로 번지고 점점 커짐으로 인해 비롯된다.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한 우리 모두는 언제나 전쟁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이다.


결국 멜로나의 사상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두고 때를 쓰는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다.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은(혹은 못한) 채로 그저 싸움을 멈추기만을 강요할 뿐이다. 또한 자신은 대의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을 옳다고 여기면서 다른 이들이 전쟁을 수단으로 내세운 것을 문제삼는 부분은 록히와 마찬가지로 멜로나 스스로 자신의 모순점을 드러낸 꼴이다. 이러한 모순점은 그의 목적이 '좋은 의도'였던 것과는 별개로 '정당하지는 못하다'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4장 마키아벨리즘의 올바른 이해 : 목적은 어떻게 수단을 정당화하는가(출처3 참조)

3장에서 등장한 중요한 질문을 상기시켜보자. 여러 예시를 통해 우리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시킬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러한 정당화에 한계가 존재하는가? 한계가 있다면 그 선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금부터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사상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말은 <군주론>의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탈리아의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모든 인간 특히 민중은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는 군주의 행동에 대하여 그 결과로써 그 수단을 판단할 뿐입니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수단도 허용된다는 뜻으로 해석되었고 교황청은 악덕을 가르치는 서적이라는 명목하에 <군주론>을 금서로 지정하게 된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에 대한 견해를 다시 떠올려보자. 전쟁과 마키아벨리즘 사이의 연관성이 보이는가? 그렇다. 정치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를 통해 둘은 개념적으로 이어져있다. 실제로 전장의 모습은 어떠한가?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참전자들은 이기기 위해 또는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공멸을 막기 위해 합의된 최소한의 선이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사실은 마키아벨리즘의 해석과 정확하게 맞물려있고 이에 따라 마키아벨리즘은 근현대의 독재 정치를 옹호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그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사실 정치를 도덕이나 종교에서 독립된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에 일정한 정치목적을 위한 수단이 도덕과 종교에 반(反)한다 하더라도 결과에 따라서는 허용될 수 있음을 피력한 것이다. 이처럼 도덕과 정치가 분리될 경우, 군주는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냉철한 것이며 좋은 목적을 위했을 경우 그 수단이 효과적인 방법이었다면 정당화 될 수 있다는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20세기 지식인 버트런트 러셀은 이러한 관점에서 마키아벨리즘을 재해석하는데 성공했다.


실제로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독재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군주론>의 다른 장에서는 악덕과 포악, 압력만으로는 대중을 통제할 수 없으며(제 8장) 난공불락의 요새가 있다해도 인민들이 미워한다면 요새는 군주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제 20장)는 내용을 담고있다. 또한 그는 다른 저서 <로마사 논고>를 통해 공화정을 지지하며 민중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진의는 처음에 제시한 마키아벨리즘의 근거가 되는 구절 그 자체를 통해서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군주의 행동에 대하여 그 결과로써 그 수단을 판단"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렇다. "모든 인간 특히 민중"이다.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곡해는 바로 이 민중의 역할을 해석에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생겨난 것이 아닐까.


위의 내용들을 정리한 현대의 마키아벨리즘의 의미는 크게 다음 3가지 해석으로 나뉜다.



유형1. 공익 특히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의 도덕적 선악에 관계없이 효율성과 유용성만을 고집하는 마키아벨리 자신의 정치사상(올바른 해석)

유형2. 공익을 도외시하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어떤 개인이나 파당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관행. 독재자나 포플리즘적 정책을 내세운 정치적 단체나 정치가(곡해된 해석)

유형3. 정치라는 범주를 떠나 자신의 삶속에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리낌 없이 남을 희생시키는 이기주의적인 처세 방식(더욱 왜곡된 해석)



각 유형의 기준점은 바로 '목적의 정당성'이다. 여기서 '목적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를 제시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모든 인간 특히 민중"이다. 결코 군주 자신이 자신만의 기준점을 내세워 민중에게 따르도록 강요할 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멜로나의 사상은 잘못된 것이다.


멜로나는 자신을 유형1에 속한다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그가 스스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에게 평가를 내리는 것은 우리들, 즉 민중이다. 민중의 입장에서 본 멜로나는 유형2에 속한다. 페를라를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행위는 멜로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혁명이었겠지만, 우리의 시선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독재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멜로나가 얻은 것은 인류의 존속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만이 옳으며 따라서 자신이 인류를 지켰다는 착각을 통한 자기만족일 뿐이다.


(그림13)그는 정말로 이 말을 새겨들었을까(에이머 115화 중)


우리들에게 있어 멜로나의 사상은 하나의 견해로서 인정해줄 여지가 있다. 즉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다른 대안이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멜로나와 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멜로나에게 있어 타인의 견해는 어떠한가? 멜로나에게 있어 타인의 견해는 다른 것이 아닌 틀린 것이다. 그에게 생존 이외의 가치는 사치일 뿐이며 그가 생각하는 것 외의 다른 대안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멜로나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결함이다.


(그림14)그들이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이루고자 하는 것은 결코 사치 따위가 아니다(에이머 시즌2 75화 중)


유형3에 속하는 전형적인 인물이 록히라는 설명은 따로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이로서 두 캐릭터의 사상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다시 한 번 내릴 수 있게 되었다.




5장 잘못된 사상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앞서 2장과 3장에서 우리는 두 캐릭터의 사상 자체가 가진 모순점을 파헤쳤다. 그리고 4장에서 올바른 사상과의 대조를 통해 다시 한 번 그들의 사상이 잘못되었음을 검증해냈다. 두 캐릭터가 잘못된 사상을 가지게 된 결정적 원인은 어린 시절 너무나 가혹한 상황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어린 시절의 끔찍한 경험은 잘못된 사상으로 이어지는가? 이는 뇌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이 부모의 보호를 가장 오랫동안 받아야 하는 종이 된 것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뇌가 완성되지 않은 채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미완성 상태로 태어난 인간은 이후 주변 환경이나 개인의 경험에 의해 하나의 개체로서 완성되어 간다. 뇌의 완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며, 어린 시절에는 뇌가 완성되지 않은 만큼 주위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특히 감정적 동요가 큰 사건일수록 뇌에 쉽게 각인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주는 감정은 두려움이나 공포다. 이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출처4, 출처5, 출처6 참조).


극한의 두려움이 만연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생존이라는 가치를 위한 그들만의 전쟁을 겪었고 끝내 살아남는 것에 성공했지만 '나쁜 방향으로 지나치게 편향된 경험에 의한 잘못된 사상'이라는 큰 대가를 치르고야 말았다. 1장에서 전쟁 중의 민간인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하며, 살아남는 소수의 사람들은 잊지 못할 후유증에 시달린다고 했었다. 록히와 멜로나의 경우, 그들의 비뚤어진 사상이 바로 그 후유증일 것이다. 그들은 분명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역이지만 그들의 과거와 삶은 우리에게 일종의 연민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우리는 록히와 멜로나의 사상이 잘못됐다는 점과 더불어 잘못된 사상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지까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사실 사상이란 단순히 탄생한 것 만으로는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아직까지 그 사상들은 그저 록히나 멜로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그들의 개인적인 생각이 사상으로서 뿌리내리려면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중들(우리들 자신)은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서론에 이미 제시해두었다. 바로 그들의 사상이 세상을 단순화시켜 표현하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단순화는 또한 록히와 멜로나의 사상이 앞서 살펴본 모순점들을 가지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단순하기 때문에 그들은 상황에 맞춰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주장을 이리저리 바꿔갈 수 있었다). '특정 사상의 문제점 그 자체'와 '문제 있는 사상의 전파'가 단순화라는 공통의 요소를 가진다는 점은 중요하다. 이는 곧 우리들 대부분 또한 록히나 멜로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틀렸듯이, 우리들 자신도 쉽게 틀릴 수 있다.




6장 단순화의 위험성 : 본질의 왜곡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우리는 흔히 펜을 가지고 글자를 쓴다. 사용하는 펜촉의 굵기로는 1mm, 0.5mm, 0.3mm 등이 있으며 당연하게도 펜촉의 굵기가 얇을수록 더 작게, 즉 더 정교하게 글씨를 쓰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 다음과 같이 하나의 공식으로 생각해보자.


펜촉의 굵기 = 글자의 정교함


간단하고 명쾌한 공식이다. 우리의 상식에 딱 들어맞으며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인다. 이제 이 공식을 반박하기 위해 한가지 제안을 하겠다. 머리카락에 잉크를 묻혀 펜보다 더 정교하게 글씨를 써보라.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는 불가능할 것이다(붓글씨의 달인에게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아주아주 특수한 경우다. 이정도로 특수한 경우라면 1mm의 펜촉으로 0.3mm의 펜촉보다 더 정교하게 쓰는 것 또한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글자의 정교함은 펜촉의 굵기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머리카락으로 글자를 쓰기 위해서는 글자를 쓰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내구성 또한 갖추어야한다. 즉 부러짐이나 휘어짐이 없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들은 그러한 조건은 "당연히 전제되어 있는 것"이라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이 세상에 "당연히 전제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유명한 데카르트를 포함해 위대한 철학자들은 '나 자신'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주체마저도 증명해야할 대상으로 두고 끊임없이 논쟁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주체인 '나 자신' 조차 당연히 전제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당연히 전제되는 조건"이 존재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모든 변수를 다 고려하기엔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를 최대한 단순화하기 위해 여러 조건을 붙인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변질되어 특정 변수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 처럼 취급된다면 이것은 본질을 왜곡시킨다(이를 '조건 생략'이라 부르겠다). 이는 변수를 상수화하기 위해 전제했던 특정 조건을 벗어난 상황, 즉 특정 변수를 다시 고려해야할 상황 자체를 생각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친 단순화 속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모순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


그렇다면 위의 공식에 "글자를 쓰기에 충분한 내구성"이라는 조건을 추가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사실 위의 공식은 애초부터 틀린 공식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펜촉보다 더욱 근본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바로 잉크 방울의 크기이다. 글자의 정교함은 펜촉의 굵기가 아니라, 펜촉 끝에서 나오는 잉크 방울의 크기가 좌우한다. 머리카락과 같은 얇은 펜촉에 잉크를 묻혀 쓴다하더라도 그 끝에 맺힌 잉크 방울이 지나치게 크다면 글자를 쓰기는 커녕 종이에 닿자마자 크게 번져 가는 잉크를 바라보게될 뿐이다.


이는 단순화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에 대한 선택 자체가 잘못됨으로 인해 생기는 왜곡이다(이를 '본질 은닉'이라 부르겠다). 본질 은닉은 위에서 살펴본 조건 생략에 비해 더욱 교묘하며, 그렇기 때문에 조건 생략과 더불어 본질 은닉이 발생한다면 문제점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정리해보자. 처음에 제시된 '펜촉의 굵기 = 글자의 정교함'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우리는 별다른 생각이나 의심없이 쉽게 받아들였다. 혹은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도 반박할 내용을 언뜻 떠올리지 못해 마지 못해 수긍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단순화로 인해 숨겨진 잘못된 부분(조건 생략과 본질 은닉)을 끄집어내어 모순점을 찾아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은 상당히 어렵고 복잡하다.


또한 공식의 간단함에 비해 이를 반박하기 위해 할애된 지면은 매우 많다. 이는 잘못된 사상에 이미 동조된 사람에게 그것의 모순점을 깨우쳐주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5장에서 잠깐 논했던 뇌과학의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충분히 받아들인 사실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이며, 이에 대한 반박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라 할 수 있다. 흔히들 말하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실패한 사상과 이념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 또한 세상의 단순화였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독일의 나치가 주장했던 전체주의 사상이다. 개인을 복잡한 인격체가 아닌, 국가를 위한 단순한 부품으로 전락시켜 국가체제의 효율성만을 극대화시킨 이 사상은 역사상 최악의 사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우리는 나치의 실패가 주는 역사적 교훈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당대의 인류가 전체주의라는 사상을 직접 겪어보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의 문제점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에이머 시즌3 35화가 연재된 당시에 일어났다. 멜로나의 사상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다가, 전체주의와 록히의 사상이라는 과거의 잘못된 사상과의 비교를 통해서야 여론이 정리되었다.


록히와 전체주의를 떠올리지 못한, 즉 멜로나의 사상을 겪어보지 못한 많은 이들이 멜로나가 가진 사상의 심각함을 스스로 깨닫지 못했었다는 사실은 우리들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결국 우리들 자신이 이러한 잘못된 사상이 뿌리내리는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단순화는 정치적 무기로 사용되어 교묘하게 민중을 속이고 선동하고 있다. 특정 정치 세력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형태로 왜곡시킨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여기에 넘어간 그 세력의 극성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로 맹목적으로 해당 세력을 지지한다(심지어 버림받았을 때 조차). 그리고 알다시피, 설득을 통해 그들의 맹목적인 사고 방식을 올바르게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오히려 그들의 단순함이 다른 이들에게 쉽게 전염되어 특정 세력에게 유리한 여론만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문제의 단순화가 얼마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는지, 이러한 왜곡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달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우리들 자신이 이러한 단순화에 너무나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은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겠으나,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맺음말

제2회 서브컬쳐 리뷰대회에 대해 알게 된 것은 1월 초이다. 리뷰하고 싶은 작품들은 여럿 있었지만 그 중에서 에이머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는 필자가 에이머라는 작품을 사랑하며 에이머가 가진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레오트랑 편 연재 당시 잦은 지각으로 인해 많은 독자들이 에이머를 떠나갔지만(요즘도 종종 지각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구독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이 기회를 통해 알리고 싶었다. 이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웹툰 에이머가 알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며, 대회를 주관한 애니큐어와 웹툰인사이트에 감사하는 바이다.



글을 끝내기 전에 다시 한 번 이 글의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싶은 부분이 있다. 바로 6장에서 논했던 단순화로 인한 본질의 왜곡이다. 4장에서 언급했던 마키아밸리즘의 곡해에 대해 떠올려보자. 마키아밸리즘에 대한 곡해는 민중의 역할을 해석에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 필자는 추측했다. 이는 단순화로 인한 본질 왜곡의 문제와 직결된다.


오늘날 사회는 사람들을 '스펙'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가치를 매긴다. 얼핏 보기에 이 기준은 아주 객관적이고 절대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펙 속에 나타나지 못한 요소들, 예컨데 개개인의 사정이나 환경 등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눈을 돌린다.


삼성 안드로이드폰과 애플 아이폰의 비교영상을 보자(출처7). 갤릭시 S9 플러스는 아이폰X 보다 월등한 하드웨어 스펙을 가지고 있지만 둘 사이의 성능차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그 이유는 안드로이드라는 운영체제 자체가 메모리를 많이 잡아먹는다는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안드로이드폰은 월등한 스펙을 가지고서도 그정도 성능 밖에 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두 스마트폰의 태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제시된 수치는 더이상 객관적인 지표로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도 눈에 보이는 수치만을 강조하는 상술에 쉽게 말려든다(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모든 전자기기의 광고에 대해서).


이외에도 수많은 예시들이 있지만 생략하겠다. 이처럼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각조차 하지 못한채로 단순화의 오류에 빠져 행동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는 우리들 스스로가 단순화의 오류에 빠져 본질을 놓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며 조금씩 그 오류 속에서 본질을 알아볼 수 있는 역량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토머스 칼라일은 그의 저서 <영웅 숭배론>을 통해 "영웅을 알아볼 안목을 지니기 위해 우리들 모두가 작은 영웅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 1학년 때 들었던 교양 과목에서 접한 이 사상에 필자는 큰 감명을 받았다. 영웅이라는 소수의 뛰어난 지도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작은 영웅, 즉 민중의 역할을 중시하는 이러한 사상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칼라일의 말처럼 우리들 모두가 작은 영웅이 되기위해 매 순간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사고하고 비판하며 점점 날카롭게, 점점 지혜롭게 우리들 자신을 다듬어가자.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미래가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출처1.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B9%98

출처2. http://lwk.kr/bbs/board.php?bo_table=H_1&wr_id=823&sca=%E3%85%87&page=1

출처3. 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D%82%A4%EC%95%84%EB%B2%A8%EB%A6%AC%EC%A6%98

출처4. https://brunch.co.kr/@betterbrain/7

출처5. https://brunch.co.kr/@betterbrain/4

출처6. https://brunch.co.kr/@betterbrain/3

출처7. https://www.youtube.com/watch?v=UY4a0IPX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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