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봄감자가 맛있단다." 추천의 변

클리셰의 활용: 실세계에서 사망 후 책빙의 방식의 액자식 구성, 주동 인물들의 설정값

익숙한, 또는 식상한 주인공의 활용

장르 소설이라고 불리는 분야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주인공 설정 방식이 몇 가지 있다.

환생과 빙의는 그 중에서도 몹시 흔한데, 이야기를 진행할 곳이 현재의 대한민국이 아닌 경우에 많이들 쓰곤 한다. 특히 이런 방식으로 세계에 떨어진 이방인이 대한민국 출신인 경우는 독자와 공감하는 동시에 해당 세계에서는 겉돈다는 특성 때문인지 연재 방식의 출판 시장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닷드스 아일은 이러한 환생자의 특질을 실감 나게 보여 준다. 201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에서 20대 여성으로 혼자 살았다는 점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을 깨워 밥을 먹이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명목상으로나마 신분제가 사라진 지 100년이 넘게 지난 세상에서 지냈으므로 중세 유럽의 봉건제에 익숙할 리도 없다. 따라서 독자와 주인공은 자신이 떨어진 세계에 대한 학습을 같은 진도로 진행할 수 있다. 이것이 작가가 세계를 만들 때 짜 넣은 첫 번째 틀이다

 

이 세계는 누구의 욕망으로 굴러가는가

무엇인가 어긋났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다른 장치이다. 주인공 아일이 이 세계에 대해 파악해 나가면서 이곳이 예전에 자신이 썼던 소설 속이라는 걸 깨닫는 지점이다. 아일은 이곳이 소설 속 세계라는 점을 기억하면서부터 자신은 방관자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균열은 여기서부터다.

아일은 자기가 쓴 내용대로 이 세계의 인물들이 움직여 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소설 속 주요 인물들과 일정 이상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성향을 보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커다란 사건과 감정은 죄다 아일에게로 몰려들고, 급기야 주변 인물들은 닷드스 아일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이야기의 초점을 제게서 비끼려는 닷드스 아일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닷드스 아일로 만들겠다는 세계의 두 욕망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것이다. 작품의 고구마사이다가 모두 이 충돌에서 나온다.

 

인물 설정을 소모할 것인가, 활용할 것인가

주인공이 원래 세상에서 작성한 소설은 미완성에, 클리셰 덩어리다. 당장 어느 플랫폼의 로맨스판타지에 가더라도 널린 설정들이 난무한다. 강력한 혈통을 자랑이자 정통성으로 내세우는 황가, 무엇을 적서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혹은 서자와 얼자일 수도 있다), 신흥 귀족 세력이 입지를 다지는 방식, 공고한 신분 제도가 사람을 얼마나 옭아매고 있는가, 그리고 기타 등등.

이를테면 황태자 카이드는 서자이다. 그 어미가 황제와 정식으로 혼인하기 전에 죽었으므로 적절한 유전자를 분배받지 못하였다. 후일 나타난 황자 르니엘은 혼인 절차를 거친 황비에게 태어났으므로 황가의 유전자를 온전히 물려받았지만, 계승 싸움에서 불리한 입장이기 때문에 유년기 대부분을 도망치는 데에 쓴다. 기사 휴르센은 본디 평민의 자식이었지만 밤낮없이 검을 수련하여 황실 근위 기사로 서임받고 상경한다. 아일이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인 넬은 길을 헤매다 아일에게 이끌려 그 집에 함께 지내게 되면서 그 집 일을 돕지만, 출신을 모르는 아이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멋대로 예뻐하는 손길이 싫더라도 묵묵히 참아야만 한다. 테인 상단주 펠르텐은 본디 아컬리트 제국의 황자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오래 된 상단을 구입하여 덩치를 불리고 세계 최대의 상단을 운영하게 된다. 포인텐 백작가의 외동딸 아트리엘은 본디 그 심성이 착하고 어질었으나 아비의 실책으로 집안이 망하고 난 뒤에는 울분과 열등감을 숙명처럼 쥐고 살아간다. 이 인물은 아일이 적은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이었다.

이렇게까지 전형적인 인물들은 얼핏 대강만 보아도 그 성격과 용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했다가는 찍어낸 듯한 이야기에 소모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는 식상한 설정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인과 관계와 인간관계를 도출하였고, 이것이 다채로운 사건의 밑거름이 되었다. 좋게 보아 서자이고 나쁘게 보면 얼자밖에 안 되는 아이가 출신의 표식을 달고서 어떻게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는지, 살아가는 내내 이유도 모르고 저를 죽이려는 자들과 숨바꼭질을 해야 했던 아이가 급기야 그들을 살해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자가 황실 근위기사가 되면 그 주변에 어떤 자들이 모여드는지, 모든 것을 빼앗긴 자가 겨우 얻은 안식처마저 보전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을 느낄 때에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 인물 각자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가장 바르거나 합리적인 길을 걷는다. 그리고 그 길은 아무도 해치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작가의 역량은 인물 각자가 가는 길을 얽는 과정에서 나온다. 누군가 자기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거꾸러졌다면, 그가 나빠서가 아니라 상대편의 힘이 강했기 때문이다. 편리한 장기말일 수 있었던 인물들은 자기 주관을 관철하기 시작하면서 독자적인 인물로 거듭났고, 그들을 둘러싼 세계 또한 소설일 때보다 한층 개연성 있고 다채로워졌다. 인물이 살아나면 욕망이 뚜렷해지고 욕망이 뚜렷해질수록 감정이 살아난다. 감정이 살아나면 소설의 흡인력이 좋아진다. 클리셰는 이렇게 매력이 된다.

 

다만,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가도 좀 위험한 부분을 멋지게 그리고 있어 독자가 주의해야 한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주요 인물들의 특성은 계략남, 흑화한 소꿉친구, 짝이 있는 이의 구애, 스토커다.

계략남의 경우는 함께 지내는 동안 아일에게 극진히 잘 해 주고 뒤로는 아일을 손에 넣을방법을 강구한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당신이 나를 사랑하든 말든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만 알아 두라고 한다. 그러고는 공개 프러포즈를 두 번이나 진행하여 아일이 꼼짝할 수 없도록 옭아맨다. 요즘 하는 말로 거절은 거절한다.’인데,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의 감정만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흑화한 소꿉친구의 경우에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을 언행으로 보여 준다. 여러 번 직·간접적으로 연정을 표현하였음에도 관계에 진전이 없자 어느 날 강제적인 스킨십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는 남자 쪽의 심경을 표현하기에는 적확했을지 모르나 로맨틱 이전에 강압적인 행위이므로 적절하지 못하다. 혹여나 누구라도 이 대목을 읽고 그 스킨십을 로맨틱 범주에 끼워넣지 말았으면 한다. 이 장면에서 보이는 감정 중 성적인 긴장감이 있어 더욱 걱정된다.

짝이 있는 이의 구애는 더욱 심각한데, 아일이 당하는 곤경 중 과반수가 이 자의 구애 때문이다. 연정에는 잘못이 없으나 주변 정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해 여러 사람에게 폐가 된 일들을 잘 했다고 해 주기는 어렵다. 남자 쪽 커플이 데면데면한데다 혼인한 사이가 아니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맡은 바 직무와 연정이 충돌할 때 무슨 재앙이 닥치는지 이 자가 잘 보여 준다.

개중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바로 스토커다. 이 자는 아일의 입장에서는 아무 맥락 없이 나타나 갑자기 아일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작품이 끝날 때까지 그는 아일을 좋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아일이 끊임없이 그를 거부하고 거절해도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다. 게다가 동의 없이 위치를 추적해 늘상 아일과 함께 있으려 들기까지 한다. 자기가 먼저 친밀한 언행을 보이고 아일에게도 그에 비등한 친밀감을 요구하는데, 그의 요구에는 항상 아일이 거절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붙는다. 지위를 이용한 위협이고 명백한 스토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인의 능력만은 출중하기에 이것이 자칫 기나긴 순애보로 잘못 보일 수 있다.

나는 이들의 방식에 절대로 찬동할 수 없고 따라서 아일이 이 모두를 거절하고 자신의 삶을 꾸리기를 염원하였으나, 태생이 로맨스판타지인 이 소설은 나의 바람을 들어 주지 아니하였다. 그나마 차선으로, 가장 세련되게 자신의 연정을 표현한 사람이 아일과 짝을 이룬 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무엇이 어떻게 로맨스가 되는가 하는 문제를 꼭 짚어 보며 읽어야만 이들이 제시하는 달콤한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당대성: 서술자의 언어 습관에서 보이는 당대 언중의 언어행태

소설의 무료 연재분 덧글에는 2015년 최고의 드립을 집대성했다는 평가가 있다.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닷드스 아일이 대한민국에서 쓰던 말버릇을 굳이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프롤레탈리아의 반란이라느니, 네가 내 아버지랑 싸울 놈이냐 소리, 레알 참트루, 관심법 쓰지 말라는 둥의 어휘를 쓰는데 당연히 아일 말고 다른 사람들은 그 언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언어 습관은 특정 사이트에서 시작하여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널리 쓰기 시작하면서 생명을 얻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식상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작품이 탄생한 시대상을 추측하는 근거가 된다. 실제 언중이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썼는가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이러한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다. 따라서 극중 아일의 코드를 이해하는 자는 그의 출신지와 같은 세계에 현존하는 독자로 한정된다. 아일은 독자들의 학창 시절과 유머 코드에 기반한 어휘를 전방위적으로 구사함으로써 독자와 자신 사이의 공공연한 유대감을 다지고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는 작가가 독자로 누구를 겨냥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면 좋은 지표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유행어와 은어 등은 양날의 검이다. 인터넷 문화에 익숙하지 못하다면 이 글을 끝까지 견디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 봄감자가 맛있단다.’-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근대 한국 문학 오마주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의 설정 일부는 김유정의 봄봄과 동백꽃에 빚지고 있다. 아일이 눈을 뜬 지역 이름은 보므봄 구의 도응배그 지방이고, 아일의 풀 네임은 Dot docile,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점순이다. 점순이와 결혼하고 싶어하던 청년을 모티브로 한 사람도, 소작 준 집 아들에게 괜히 수작을 걸어 귀찮은 년 소리를 들었던 점순이를 모티브로 한 사람도 있다. 풍자와 해학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교과서 속 작품들을 굳이 끄집어내어 그것이 온갖 배경을 바꾼다고 가벼워질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님을 낱낱이 드러내고, 나아가 소설에서 벌어지는 온갖 상황에 현대 한국인의 경험을 레퍼런스로 붙여 독자의 공감을 구한다. 아일의 말에서, 서술자의 설명에서 여러 가지 미디어 작품들이 되살아나는 부분이 꽤 볼만하다. 아일과 독자, 혹은 더 뛰어넘어서 작가와 독자 간의 동질감을 확인할 수 있을 부분이리라.

 

다중 엔딩: 각 인물의 앞에 놓인 장애물은 무엇이었나

작가는 집필 후기에서 누누이 말하기를 A 주인공 파트를 쓸 때는 B 주인공에게 치이고(즉 마음이 많이 쓰이고), B 주인공 파트를 쓸 때에는 C에게 눈이 간다고 했다. 실제로 소설 속 사건과 인물의 비중은 주동 인물 다섯 명에게 거의 비등하다. 연재 시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한 것은 아일이 누구를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 때까지 벌인 사건 모두를 수습하려면 결국 한 명을 선택해야 했지만 작가와 독자 양쪽이 남자 네 명을 너무나 아까워했고, 이는 결국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이어진다. 본편의 엔딩은 한 명으로 고정하되, 나머지 인물들에게도 각각의 해피엔딩을 선사하기로 한 것.

소위 다중 엔딩을 도입하면서 인물들은 저마다의 특색을 훨씬 선명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 각자가 아일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하게 처리해야 하는 과업과 열망이 무엇이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을 선택하려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중대한 선택을 한 뒤에는 어떠한 일상을 살아가려는지. 각각의 세계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행복을 일구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고,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주변 인물의 반응도 달라졌다. 색깔과 질감이 다른 각각의 해피엔딩은 그대로 패럴렐 월드로 남았고, 누구를 주인공으로 한 버전을 읽더라도 다른 세계에서는 얘가 행복하니 됐다는 소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단편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이야기 중반에서부터 각각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강행군을 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 작업으로 작가 또한 작품을 온전히 제 손에서 떠나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작가가 주도하는 2차 창작: 인물에게서 구성 요소를 하나씩 바꾸고 벗겨내 보자.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무료 플랫폼 연재 당시 덧글 란에서 작가와 독자가 주인공을 데리고 2차 창작을 하며 노는 문화를 형성하였는데,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소위 너봄맛 AU’이다. 이것은 아직 무료 플랫폼에 연재분이 남아 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주인공들을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느와르 장르로, 초기 인터넷 소설로, 연예 기획사 아이돌로 보내어 2차 창작을 이어 갔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캐릭터는 본편으로, 독자들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인 캐릭터는 AU로 남았다. 특히 아이돌 룩스 편의 인기가 대단해서 어느 애독자가 이 아이돌의 4집 타이틀 곡을 실제로 작업해 공개한 일도 있었다. 독자들이 내어놓는 아이디어와 팬픽이야 차고 넘치는 것이지만, 작가 자신이 본편 연재 중에 이야깃거리를 들고 와 독자들과 함께 2차 창작을 해 나가는 모습은 몹시 인상적이었다.


데이터를 물화하기까지-독자가 지켜본 작가의 출판 고난기

카카오 페이지에서 이 작품을 서비스하기 시작한 지는 고작 한 달 남짓밖에 안 됐지만, 사실 이 작품은 여러 번 상품화되었다. 모 출판사와 함께 이북 작업을 하다가 유행어와 비속어를 모조리 교정하려는 담당자를 만나기도 하고, 이북 작업과 별개로 작가 측에서 위에서 설명한 다중 엔딩을 내걸고 실물 단행본을 발행하기도 했다. 카카오 페이지에 올라갈 외전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지만 현재로서는 다중 엔딩은 이 때 발행된 종이책에만 실린 상태다. 제품 형태가 무엇이건 그 나름의 메리트 하나씩은 있는 셈이다. 여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가치 있는 작품이 잘 맞는 짝을 만났으니 팬으로서는 그저 흡족한 일이다.

 

누구에게 추천하는가

키워드: 환생자, 책빙의, 역하렘, 키잡, 아카데미, 소꿉친구, 갑부, 궁중암투

특히 내가 사랑받을 수 있을 리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요한 고비에서 뭔가를 선택하는 것이 힘든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카카오페이지 본편 연재분 바로가기(클릭)

조아라 AU 연재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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