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숨막히는 콜라보레이션, <종의 기원> - WIIZM WEBTOON (WEBTOON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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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이토록 숨막히는 콜라보레이션, <종의 기원>


종의 기원

official icon 이토록 숨막히는 콜라보레이션, <종의 기원>

제 1회 비룡소 세계 청소년문학상 대상, 제 5회 은행나무 세계문학상 수상. 이런 꼬리표는 식상하다. <7년의 밤>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정유정 작가는 특유의 문장력과 치밀한 심리극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다음 작품인 <28>에서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지옥도를 겪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꼬박 3년이 걸려 2016년에 발표된 작품 <종의 기원>은 주인공 유진을 중심으로 앞서 언급한 두 작품과 함께 “악”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최근, 이 작품은 저스툰에서 정유정 작가의 최신작이 웹툰으로 재탄생했다. 그로테스크한 그림과 더불어 소름끼치는 묘사로 “한국의 팀 버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개미 작가가 작화와 각색을 맡았다.




처음에는 당연히 정유정 작가의 책이 위즈덤하우스에서 나왔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유정 작가의 거의 모든 책은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출판됐다. 여기엔 <명탐정 코난>과 <베르사유의 장미>등의 국내 컨텐츠 관리를 맡은 에스에스애니멘트가 웹툰 제작을 시작하면서 저스툰과 협업을 하게 된 것이 컸다. 에스에스에니멘트에서 작가 섭외와 판권 이슈, 제작을 해결하고, 저스툰에서는 연재를, 위즈덤하우스에서는 출판을 목표로 진행된 프로젝트다.


소설과 웹툰 <종의 기원>은 가상의 신도시인 군도신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해 범인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정유정 작가는 이 소설의 모티브를 대표적인 연쇄살인마 사이코패스 유영철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만들었으며, ‘사이코패스의 자기변론서’라고 이 작품을 소개했다. 주인공 유진은 가족여행에서 아버지와 형을 잃고, 그 뒤로 정신과 의사인 이모가 처방해준 약을 먹게 됐다.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드는 약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유진은, 가끔 약을 끊고 어머니 몰래 밤에 외출을 하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잠에서 깬 유진은 자신이 피범벅이 된 상태에서 깨어난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주방에는 어머니가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있었고, 자신이 살고 있는 군도신도시에서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종의 기원>은 이 연속 살인사건이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를 파헤쳐가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다른 추리물들과 다른 점이라면, 주인공이 바로 범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작품은 애써 그것을 숨기지도 않는다.




유진은 약을 끊으면 ‘개병’이 나서 오감이 면도날처럼 날카로워지고, 약의 부작용으로 얻은 두통과 무기력증이 사라진다. 그리고, ‘마법의 시간’에 들어간다. 약물 중독자들은 환상을 쫓기 위해 약을 먹지만, 유진은 환상을 얻기 위해 약을 끊는 것이다. 아마도 사이코패스인 유진을 억제하기 위해 처방한 약일 것이다. 때문에 유진은 자신의 인생을 ‘두 여자(이모와 어머니)가 깔고 앉은 방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더욱 충격적이다. 악을 대결구도의 대상으로 만들기보다 악인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설의 독자였던 나로서는 한가지 딜레마에 사로잡히게 된다. 시각화가 된 작품을 보고싶으면서도 동시에 시각매체로 이식된 이 작품이 시시해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아마 그동안 시각매체로 이식된 다른 작품들에서 실망감을 느껴온 것이 학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속에서 펼쳐지는 소설의 이미지는 고정되어있지 않지만, 대표적 시각매체인 영화의 모습은 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웹툰 <종의 기원>은 그런 걱정을 불식시킬 정도로 훌륭한 재해석을 해냈다. 정유정의 문장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안개 낀 군도신도시의 을씨년스러운 모습, 그리고 혼란스러운 유진의 내면을 숨죽여가며 엿볼 수 있었다. 개미 작가가 그려낸 선은 폭발 직전의 자신을 애써 다스리는 유진의 모습 같으면서도, 동시에 어느 순간에는 야수처럼 날뛰는 유진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재미를 감정의 진폭이라고 생각한다면, 사이코패스 주인공은 그리 좋은 주연은 아니다. 감정이 결여된 주인공은 감정의 진폭이 작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일주일을 주기로 연재되는 웹툰에서 사이코패스가 느끼는 긴장감에 매번 독자들을 빠뜨리기도 쉽지 않다. 개미 작가는 이런 한계를 배경 색채의 변화와 독백으로 메꿔나간다. 붉은 색과 청색, 그리고 둘을 섞은 보라색이 주요 색채로 사용되는데, 유진이 충동적이거나 긴장했을 땐 주로 붉은 색이, 냉정하게 판단을 내리거나 과거의 일을 기억할땐 청색이, 혼란스러움을 표현할 땐 보라색이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반복되는 색채의 변화를 통해 작가는 소설에서 문장을 통해 말해주어야 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건너뛰어 그림을 통한 시각화에 힘쓸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유진의 독백은 감정이 배제된 채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추리를 위한 회상, 또는 자신이 습득한 단서를 해석하기 위한 독백으로 주로 등장한다. 감정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제3자가 자신의 상황을 읊어주는 듯한 독백은 독자들이 자칫 유진의 상황 밖으로 빠져나갈 통로가 될 수도 있지만, 유진은 끊임없이 “나”라는 주어를 사용한다. 독자들이 이질적인 유진의 감정과 극단적인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없도록 유진은 끊임없이 “나”의 상황을 브리핑하고, 동시에 자신이 출구를 찾는 모습을 응원하도록 만든다.




정유정 작가는 최근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인터뷰집에서 “독자가 내 소설 안에서 온갖 정서적 경랑과 만나기를 원한다. 기진맥진해서 드러누워버릴 만큼 극단의 감정을 경험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웹툰 <종의 기원>이 이만큼의 흡인력을 가지게 된 건, 정유정 작가가 독자의 눈앞에 문장이 이미지로 펼쳐질 만큼 시각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흑백의 이미지 속에서 몇 가지 색채로, 그리고 문장으로 소설 속 세상의 분위기, 그리고 원작자의 문장까지 구체화하는 것은 당연히 웹툰의 편집자와 제작자의 역량이다. 오히려 정유정의 소설에서 느껴졌던 혼란스러움과 어지러운 속도감이 주간연재 형식으로 정리되면서 독자들에게 읽기 편하게 잘라주는 다이제스트의 느낌도 든다.


소설의 독자로서, 또 웹툰의 독자로서 이렇게 완성도 높은 작품을 두 갈래로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건 큰 행운이다. 다양한 시각매체로의 이식에 염증을 느낀 독자라면, 이 작품이 그 거부감을 없애 줄 시작이 될 것이다. 이토록 숨막히는 콜라보레이션이라니, 앞으로 이어질 유진의 세계에선 어떤 색이 주로 등장할지, 또 유진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질지가 기대된다. 




* 본 리뷰/평론은 이재민 웹론평론가와 성인수 만화평론가/작가 공동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이재민 웹툰평론가는 웹툰을 기준으로, 성인수 만화평론가/작가는 출판만화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이재민(푸른봄) 웹툰평론가 웹툰 평론 "이토록 숨막히는 콜라보레이션, <종의 기원>"

* 성인수 만화평론가/작가의 출판만화 평론 "[종의 기원] 1권"



한줄평) 정유정 작가의 인기 소설, 그리고 그 소설이 만화를 통해 시각화되었을 때 느껴지는 전율.


장점

  • 원작의 숨막히는 몰입감을 살린 전개
  • 감정이 결여된 주인공에 몰입하게 만드는 독백
  • 치밀한 구성과 문장력
단점

  • 다만, 주간연재를 따라가며 읽기보다 한번에 정주행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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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봄
  • 작성자 : 푸른봄
  • 작성일 : 2018/06/30 - 12:54
  • 소개글
만화를 좋아합니다.
때문에 웹투니스타를 시작했고, 어쩌다보니 평론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화 평론과 만화계 전반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문의 : webtoonista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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